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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Jun 25. 2022

각자의 연주

모두 각자의 연주를 하고 있었다.

멈췄던 순간들 10.

각자의 연주


지난 토요일 짝꿍과 연주회에 다녀왔다. 

하이하바 제1회 수강생 연주회. 작년에 내가 다녔고, 짝꿍은 지금도 다니고 있는 음악학원이다. 단순히 음악학원이라고 하기에는 아쉽다. 모두의 음악공간. 하이하바에서는 기타와 우쿨렐레, 피아노 레슨을 받을 수 있다. 수강생 대다수가 성인이고, 어린이 청소년 수강생도 있다. 다정한 선생님들과 편안한 공간 덕분인지 수강생이 많아졌다.


연주회장은 하이하바가 있는 건물 2층 카페였다. 도착하니 카페 앞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며 연습하는 연주자들이 보였다. 연주하는 팀은 약 서른 팀. 그중 내가 알고 있는 연주자는 일곱 명. 이들의 연주를 듣고 싶어 왔다. 급하게 도착하느라 꽃을 사지 못해 아쉬웠다. 카페 안쪽이 무대였고 그 뒤로 의자들이 채워졌다. 문을 활짝 열어 테라스 좌석까지 자리를 만들었다. 카페는 연주자들과 그들의 가족, 지인들로 사람이 가득했다. 사람이 많아 자리에 앉지 못할 줄 알았는데 운 좋게 공연 시작 전에 테라스 쪽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테라스 쪽 좌석은 연주자의 모습을 보기가 어려웠다. 몸을 옆으로 틀고, 고개를 쭈욱 빼내야 겨우 작게나마 볼 수 있었다. 약 3시간의 공연 동안 내가 보았던 건 관객석이었다. 귀는 연주자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서 관객석에서 얼굴을 보았다. 연주자가 떨며 무대로 입장하는 모습. 후련해하거나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무대에서 나오는 모습. 연주자가 연주할 때 그의 가족이나 지인이 카메라에 담는 얼굴을 보았다. 지금 떠올려봐도 기억에 남아있는 건 연주자의 연주보다 그런 얼굴이다. 이상하게 관객석만 보다가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어떤 연주회에서도 볼 수 없는 얼굴들이 있었다. 함께 긴장하고, 응원하고, 자랑스럽게 보는 얼굴들. 사랑스럽다는 듯 웃는 얼굴이 있었다. 아름다웠다. 이런 순간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모두 각자의 연주를 하고 있었다. 물론 연주회를 위해 연습하고 또 했겠지만, 그럼에도 실수할 수 있다. 프로 연주자가 아니니까. 하이하바 연주회에서는 실수 또한 연주회의 한 부분이었다. 실수해서 다시 시작한 연주자가 몇 있었는데, 관객들은 더 큰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연주자의 떨리는 목소리와 작았던 연주 소리는 시간이 지나자 점점 더 커지고, 자신감이 생겼다.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있는 모습 그대로 무대에 설 수 있고,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연주회.


어른이 되어 좋은 점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새로운 기억으로 덧씌울 수 있다는 점이다. 나에게 음악은 공포에 가까웠다. 어릴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즐거웠던 기억이 없다. 레슨을 받을 때마다 혼날까 두려웠고, 어쩌다 무대에 서는 순간이 있으면 무척이나 긴장했던 터라 매번 실수했다. 음악이란 완벽해야 하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 절망했던 순간들도 떠오른다. 바이올린을 그만둔 이후로 연주와는 모른 체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작년 피아노를 배움으로써 음악은 과정이라는 것을, 틀리고, 못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체득하기 시작했다. 음악은 즐거움이라는 걸 하이하바에 다닐 때 배웠다.


“틀려도 괜찮아요. 틀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마음껏 실수해도 돼요.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성장해 있을 거예요.”


연주회 리플렛에 적혀있던 글. 음악을 하는 시간 대부분은 결국 과정이다. 완벽히 연주하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지 않을까. 완벽히 연주하기 위해 연습하고, 연습하는 과정의 시간을 보낸다. 하나의 곡을 제법 그럴듯하게 칠 수 있게 되면, 다른 곡으로 넘어간다. 하이하바 연주회에서는 이 과정을 모두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많이 아낀 어른이 있었다. 그는 내가 청소년 때부터 어른이 된 이후에도 내가 내린 몇몇 결정에 반대의견을 냈다. 나는 고집쟁이여서 말을 듣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뒤 그때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나요, 대답했지만 살아가는 방식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그로서는 나를 아끼는 마음에 했을 이야기였다. 돌아보니 무슨 선택을 했든 중요치 않다. 학교를 그만두느냐 마느냐, 연애를 계속하느냐 마느냐, 직장을 그만두느냐 마느냐, 누군가와 관계를 끊느냐 마느냐, 안 가본 길을 가느냐 마느냐.


중요한 건 여러 개의 길 앞에서 내리는 나의 선택이었다. 누군가의 선택이 아닌 나의 선택. 그 선택을 한 나를 믿어주고, 그 길에서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면 무얼 선택해도 괜찮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할 때마다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 나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틀려도 괜찮고, 넘어져도 괜찮고, 잘못 들어서도 괜찮은 건 음악뿐만 아니라 인생도 그렇다는 걸 잊고 싶지 않다. 자꾸 넘어지면서, 틀리면서, 나만의 연주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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