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히 May 22. 2022

Thank you for your kindness.

어떤 기억은 두고두고 생각이 나요.

멈췄던 순간들 05.

Thank you for your kindness.


-

어떤 기억은 두고두고 생각이 나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당신이 내게 꽃을 선물한 기억이 제겐 그래요. 나쁜 일도 좋은 일도 금방 잊고 마는 성격이지만, 좋았던 경험은 기록하려 합니다. 쉽게 잊고 싶지 않아서. 나쁜 날 꺼내 보며 다시 힘을 얻기 위해서. 당신이 내게 꽃을 선물한 날도 기록해 두었지요. 2017년 3월 18일. 일하고 있다가 근처 꽃집에서 보낸 꽃다발과 카드를 받고 얼마나 기뻤던지요.


Thank you for your kindness.


혼자 지켰던 카페에서 어리둥절하며 받았다가 이내 마음이 환해졌던 기억이 나요.


제가 일했던 데본포트는 오클랜드 시티에서 15분쯤 페리를 타면 도착하는 곳이었어요. 아주 멋진 곳이지요. 세계 각국을 다니는 크루즈가 정박하는 곳이라 크루즈가 도착하는 날이면 동네는 활기가 넘쳤어요. 근처에 해군기지도 있어서 해군도 자주 보였고요. 나무배를 만드는 곳도 있었고, 바다가 보이는 도서관도 있었지요.


카페는 자그맣지만 오래된 공간이었어요. 동네의 오랜 단골들과 관광객들이 모두 찾아오는 곳이었지요. 아침 여섯 시 문을 열면 동네 주민들로 가득 찼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와 아침 식사하는 가족, 출근하기 전 매일 같은 음식을 주문하는 손님, 아침 운동 후 운동복 차림으로 오는 할머니 서너 분이 생각나요. 백발 숏컷의 운동복 차림으로 오는 할머니들이 멋져 보여 저도 처음으로 숏컷을 시도하기도 했답니다. 물론 할머니들만큼 멋지지는 않았지만요. 오후에는 근처 상가 사장님들이 커피를 주문하면 1, 2분 잠시 자리를 비우고 배달하기도 했어요.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편이라 일할 때는 긴장을 많이 했어요. 달걀과 빵을 그렇게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는지도 처음 알았고요. 커피도 사람마다 자기가 원하는 방식이 있었고,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긴장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럼에도 실수를 자주 했습니다. 실수투성이였어요. 감사하게도 손님들은 괜찮다고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실수하며 조금씩 나아졌고요. 나중에는 자주 오는 손님들의 주문은 저절로 외워졌지요. 그곳에서 일하면서 너그러움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저는 고마운 마음에 오는 손님들께 늘 친절하려고 애썼어요. 그런 모습을 당신은 알아봤을까요.


같은 해 9월, 저는 고향으로 돌아와 작은 책방을 열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지낼 때 돌아가면 책방을 하고 싶다고 상상했었는데, 정말로 하게 될지는 몰랐어요. 고맙게도 책방 하며 지난 5년간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다정한 사람들이 찾아와주었고, 과분한 선물도 받았어요. 그리고 꽃도 많이 받았답니다. 꽃은 언제 받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선물이에요. 꽃을 보면 그 꽃을 선물해준 이가 떠올라요. 책방을 닫는다고 알렸을 때 꽃을 선물해준 이들이 있어요. 끝맺음을 축하해주고, 앞으로의 날들을 응원한다고 꽃을 선물해주었을 때 어찌나 감동했었는지요. 저는 마지막 영업 이틀 동안 방문해주시는 분들에게 드릴 튤립을 준비했어요. 제 생각보다 많은 분이 찾아와 튤립은 금방 동이 났지만요. 손님들이 저희 책방을 꽃 한 송이로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지금 집에는 계란꽃이라 불리는 마트리카리아 꽃 화병이 식탁 위에 있어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선물로 주었지요. 저를 닮았다고 하여 기쁨이 배가 되었습니다. 저를 닮은 꽃이라니요.


꽃은 이내 시들고 사라집니다. 식탁 위에 꽃도 곧 시들고 말 테죠. 당신이 준 꽃은 언제 시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네요. 대부분 꽃은 얼마간 향기를 남기고, 사라지지요. 버려집니다. 꽃은 건네 받을 때, 그때가 가장 빛나는 순간인 것 같아요. 꽃 자체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나를 위해 꽃을 선물한 이의 마음을 가장 먼저 헤아릴 수 있으니까요.


어떤 기억은 오래 남습니다. 당신이 5년 전에 보낸 꽃을 지금 제가 기억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이 기억을 앞으로 10년 후에도, 50년 후에도 가지고 있고 싶어요. 이십 대 중반 먼 나라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 누군가 내게 꽃 한 다발을 보내주었지, 하고요. 그럼 지금 저처럼 슬그머니 미소를 짓게 될 것만 같아요.


당신은 저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아마 그러진 않을 것 같아요. 당신이 꽃을 선물한 것도 잊었을 수도 있겠지요. 저는 당신의 이름도 얼굴도 국적도 모르는걸요. 그래도 뭐 어때요. 우린 살다가 어느 순간 만났고, 서로에게 친절했으며, 마음을 나누었으니까요. 당신이 살아가다 힘들 때, 누군가 당신에게 꽃을 선물하기를, 친절을 베풀기를 멀리서 기도해요. 저는 당신에게 받았던 마음을 주변인에게 나누도록 할게요. 사랑을, 친절을 잃지 않고 살아갈게요. 고마웠어요!


Thank you for your kindness.


with love,

승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