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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Oct 16. 2020

이 세상 모든 주니어에게 바치는 글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에게

직장생활의 에필로그


[에필로그]
소설이나 연극, 영화, 만화 등 작품의 줄거리가 끝난 후에 덧붙인 보충된 부분을 말함. 후일담으로도 번역됨(출처: 위키피디아)

소설 속 주인공이 운명의 짝을 만나 결혼하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멈춘다면, 우리는 모두 뒷이야기를 궁금해해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후에도 행복하게 살았을까?', '주인공과 똑 닮은 아이가 태어나, 자신의 부모가 겪은 상황을 또다시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주인공을 괴롭혔던 악역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이야기의 엔딩 지점에서, 독자들은 후일담을 궁금해하며 무수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다.  


직장생활은 나에게 가장 흥미롭고도, 성가시며, 예측 불가한 소설과도 같았다. 재미없으면 읽지 않아도 그만인 소설과는 달리, 재미가 없다고 하여 어느 날 갑자기 직장생활을 그만둘 수 없다는 것에선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지만. 회사에서 유난히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고 느낄 때마다, 행복 회로를 돌리곤 했다. 전쟁 같은 일과를 끝내고 집에서 어떤 행복을 맞이할까 하는, 직장생활의 에필로그를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업무를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손에 익어, 일을 할 때 불안감이나 긴장감을 조금씩 덜어놓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날 훅하고 나사가 풀린 것처럼 일상이 단조롭게 느껴지고, 점차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나는 3년 차에 이런 시기가 찾아왔다. 맡은 사업 특성상 트렌디한 마케팅보다는 매출과 고객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이전까지 해왔던 마케팅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의 반 이상을 새로운 업무보다는 반복적인 업무로 채워야 할 때가 늘어났다. 


늘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 없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는 데 강점이 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런 업무 환경은 일에 대한 흥미를 거두어갔다. 소위 말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이 사라진 채 오선지 위 도돌이표를 만난 것처럼 반복되는 직장생활에 권태를 느끼며 방황했다. 

출처 : 내 사진첩(작년까지만 해도 방황할 때마다 여행을 즐겼는데. 망할 코로나)

결국엔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


방황에서 벗어나고자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회사에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마케팅을 답습하기보다는, 온라인 광고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성과를 달성해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환경에 나 자신을 놓아보기도 했다. 회사 밖에선 스쿠버다이빙, 요리 수업 수강, 글쓰기 모임 참여, 수상스키, 소설 창작 클래스 참가 등 평소 관심만 갖고 있었던 활동에 도전하며 새로운 경험을 온몸으로 맞이했다. 

출처 : 내 사진첩(새로운 것을 찾아 수상스키에 처음 도전했던 날)

처음엔 새로운 것에 열광하느라 기존의 것에 소홀히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내게는 나조차도 모르고 있는 '내'가 있었다. 새로운 것들을 하면서도 기존에 해오던 일들, 예컨대 회사에서의 루틴한 업무나, 매일 반복해야 하는 운동, 집안일 등을 하는 것이 더 이상 싫지가 않았다. 오히려 삶에 기존의 것들은 안정감을, 새로운 것들은 활력소를  불어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인정했다. ' 아 나란 사람은 새로운 것과 기존의 것이 적당히 균형 잡힌 삶을 살아야 행복을 느끼는구나.'라고. 


그래서 진정성 있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일상에 쫓겨 새로운 일을 할 여유조차 가질 수 없을 때가 많다. 아무리 내가 '어떨 때' 행복한지를 깨달아도 경험할 시간조차 없다면 결국 깨달음은 소용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새로운 것을 하는 데 충분한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 쓰는 것 밖에 없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소망, 가치, 생각, 가치관, 취향 등 나를 이루는 구성요소를 글에 녹여 넣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내는 것. 그리고 댓글을 통해 새로운 독자분들과 만나며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금 내 글을 보게 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글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헀다. 여러 글 중에서도 가장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동시에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분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글. 그것이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쓴 글)

https://brunch.co.kr/@soodolnam/26


이 세상 모든 주니어에게 바치는 글


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나였기에 나를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회초년생이자, 90년대생, 직장인 3년 차로서 회사 안과 밖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글에 담았다. 


"그땐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지금 참 많이 단단해졌네!" 인턴 시절 겪었던 최악의 에피소드를 글로 쓰고 독자분들께 댓글로 위로받으면서 트라우마로 남았던 그때의 상처 받았던 마음이 치유될 수 있었다.

(그때의 에피소드는 아래 글에 담겨있다.)

https://brunch.co.kr/@soodolnam/24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독자분들이 남겨주신 댓글을 보고 있자면 주니어로서 직장생활에서 겪었던 힘든 순간들이 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자리 잡혔는지 상상조차 안될 때가 있다. 그러나 회사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월급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노동력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 우리이기 때문에 신입 때보다 오히려 신입을 갓 지난 주니어일수록 더욱 고된 직장생활을 맞이하게 된다. 이럴 때 상사로부터 상처를 받거나 본인 스스로 정체되어있다고 느끼면 그때부터 끝을 알 수 없는 감정의 늪에 빠지게 되고 흔히 말하는 '슬럼프, 현타'를 경험하게 된다. 

출처 : 인터넷(아마도 웹툰 짤일 듯. 이렇게 우리는 1일 1 현타를 경험하게 된다.)

감정의 늪은 직장생활에서 한 번만 있는 고난의 길 이 아니다. 내가 가는 길에 늘 놓여있는 존재이다. 빠지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이지만 빠지게 되더라도 빠지지 않은 척 눈 앞에 있는 모든 나뭇가지를 붙잡고 가장 빨리 그 늪을 벗어나야 한다. 그들 앞에 놓여있는 나뭇가지 중 가장 든든한 나뭇가지. 내가 쓴 글이 이 세상 모든 주니어들에게 그런 나뭇가지가 될 수 있길 바랐다. 직장생활을 돌아보면서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아 지금까지의 [직장인 3년 차 퇴사 대신 글쓰기] 매거진을 완성할 수 있었다. 


끝 마치며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가는 길에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직장생활에서 살아남을 것인가는 결국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다. 일감을 몰아주던 팀장도, 늘 말도 안 되는 일로 괴롭히던 상사도 결국엔 우리 스스로 내리는 선택에 있어선 방관자의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지키고 성장시켜 결국 직장생활에서 살아남게끔 만드는 것은 결국 본인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깐 조금만 더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자. 이 세상 모든 주니어에게 한마디를 바쳐본다. 우리는 모두 잘하고 있고, 더 잘 해낼 거니깐, 한번 더 힘을 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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