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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Oct 25. 2020

1인 가구에게 당근마켓이란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겠지

당근마켓 써본 적 있어?


독립한 후 첫 집들이에서 친구가 물어봤다. "그럼! 네가 앉아있는 그 의자도 당근마켓에서 샀는걸!"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최소한의 가구만 사다 보니 정작 집들이 날 친구들이 앉을 의자가 부족했었다. 손님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집들이 때문에 어쩌다가 두세명 정도 올 때를 위해 여분의 의자를 사는 건 낭비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손님들을 방바닥에 앉아 대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최대한 저렴하면서 휴대가 간편한 의자를 찾다가 '접이식 스툴'이라는 종류의 의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케아의 접이식 스툴이 디자인이나 가격적인 측면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스토어가 서울에 없어 배송료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중고나라에 들어가 봤지만 직거래가 아닌 이상 배송료가 꽤 비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당근마켓에 들어가게 되었다. 

출처: 당근마켓 PC버전(https://www.daangn.com/, 당신 근처의 마켓이라는 뜻처럼 당근마켓은 동네 기반의 중고거래 플랫폼이다.)

1인 가구를 위한 신세계


이전에도 당근마켓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중고로 물건을 산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구매를 망설이다가 거래가 불발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알림'이 와서 당근마켓에 오랜만에 접속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위치를 다시 정하고 나니 거래 중인 물건이 쏟아져내렸다. 


확실히 서울이라서 그런가. 본가를 '우리 동네'로 설정했을 땐 이렇게 다양한 물건이 없었는데 신세계처럼 느껴졌다. 필요했던 '접이식 스툴'을 검색해보니 확실히 동네가 오피스텔 밀집 지역이라 그런지 나처럼 잠깐 집들이 '만'을 위해 사뒀다가 팔고자 물건을 내놓은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할 역할이란 그들에게 채팅으로 연락을 취해, 필요한 물건을 말한 뒤 약속시간에 맞춰 물건을 가지러 가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판매자들이 내가 살고 있는 집 주변 10분 이내에 거주하고 있어 물건을 운반하는 데 수고로움까지 덜 수 있었다. 

출처: 내 당근마켓 구매내역(싸게 의자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당근마켓에 입문하게 되었다


쓰면 쓸수록 당근마켓은 신세계였다. 사기일까 봐 중고 판매 사이트에서 구매하기 망설였던 '고가'의 물품도 당근마켓에선 위험부담이 크지 않았다. 중고나라에서 노트북을 샀더니 판매자가 택배박스에 벽돌을 담아 보냈다는 구매자의 억장이 무너져 내릴법한 이야기도 당근마켓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일들이었다. 직거래를 고수하면 그만일 뿐, 게다가 판매자 앞에서 물건을 확인할 수 있다 보니 성능까지 테스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렇게 당근마켓에 푹 빠져버린 나는 필요에 따라 구매자가 되었다가 판매자가 되기도 했다. 집들이용 의자를 시작으로, 재택근무하면서 오래 앉아도 허리에 부담을 주지 않는 안락의자를 구매했고 이윽고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용 이력이 없는 거의 새것 같은 제품을 선호했고, 판매자 앞에서 물건을 눈으로 보며 사용감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사기를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구매했어도 실제로 잘 쓰지 않으면 구매했던 가격보다 1/3 정도 저렴한 가격에 당근마켓에 재판매하기도 했다. 집들이용 스툴도 집들이가 끝나자마자 당근마켓에 내놓아 3분 만에 팔리는 신기록을 세웠다. 



당근마켓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당근마켓은 시대를 잘 만난 플랫폼이다. 마치 물 만난 고기 같달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집을 꾸미거나 정리하는 데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 관심은 자리만 차지한 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물건들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가계 경제도 나빠지다 보니 새것을 구매하기보다는 사용감이 많지 않은 중고를 구매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 소비라고 사람들은 여기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배송료 절약이라는 직거래의 가장 큰 장점을 특징으로 하며, 거래 과정을 신뢰할 수 없다는 중고거래의 가장 큰 단점을 보완하는 당근마켓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 결과 당근마켓은 구글 플레이스토어 기준 1천만 이상의 앱 다운로드 수를 가진 중고 거래 1위 플랫폼이 될 수 있었다.(참고로 중고나라 앱 다운로드 수는 5백만 이상/ 당근마켓이 우위에 있다.) 


당근마켓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어떤 소비를 하고 있었을까. 소비할 여력이 없음에도 물건을 반드시 새것으로 사야 했거나, 만약 사지 못했다면 물건이 없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상 속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야만 하지 않았을까.

출처: 내 당근마켓 판매내역(접이식 의자를 비롯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간편하게 팔 수 있었다.)

이만 마치며: 당근마켓, 그 참을 수 없는 플랫폼에 대하여


'당근마켓을 한 번도 쓰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쓴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한번 발을 담그고 나니 헤어 나올 수 없는 존재가 당근마켓이다. 키워드 알림을 설정하고 나니 핸드폰에 당근마켓 메시지가 뜰 때마다 만사를 제쳐두고 휴대폰을 부여잡고 메시지를 확인하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당근마켓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필요한 물건이 없으면 없는 대로, 어느새 우리 동네 인기 매물 알림마저 챙겨보고 있다. 예전에는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자 당근마켓에 접속했다면, 이제는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필요한 것이 없어도 당근마켓에 판매 중인 물건을 둘러보며 '필요한 물건'을 찾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구인/구직, 동네 업체 홍보, 커뮤니티 등 여러 기능이 추가되고 있는 당근마켓을 보며 이 플랫폼의 Next Step은 무엇일까 궁금함이 앞선다. 중고거래, 동네 가게 홍보, 구인/구직, 커뮤니티 등 현재 있는 기능부터 현재는 없지만 있으면 좋을법한, 동네 마트 장보기, 동네 공동육아 등 동네를 기반으로 한 여러 기능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추가되지 않을까. 당근마켓이 점차 발전하는 과정을 유저로서 행복하게 지켜보는 것, 그것이 이제 내 역할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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