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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PD Sep 19. 2020

당신이 잠든 사이에

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12)

“나 저거 사야 돼.”

“네?”

미처 뭐라고 물어보기도 전에 어머니께서는 전화기에 손을 가져가신다. TV에는 이름 모를 브랜드의 주방기구가 신나게 방송되고 있었다.

저번에도 봤는데 좋아 보이더라는 혼잣말을 하며 주문하시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격앙돼보여 웃음이 나왔다.




홈쇼핑을 보면 매일 매시간 참으로 많은 상품이 노출되고 있다.
굳이 홈쇼핑에 종사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보지 않더라도 그중 어떤 것이 괜찮은 상품이고 아닌지 판단하는 것이 관건임은 부인할 수 없다. 어떤 방송을 봐도 이 상품이 좋다고 큰소리로 외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과거 고객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고객들은 이미 괜찮은 상품을 판단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 방법은 제법 합리적이기까지 했다.

“홈쇼핑에서 방송을 자주 하는 상품이 있으면 그것을 유심히 봐요. 잘 팔리지 않는 상품을 자주 방송 할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자주 노출되는 상품은 잘 팔리는 상품일 가능성이 높고 잘 팔리는 상품은 괜찮은 상품일 확률이 높다는 논리이다.
이 얘기는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이다. 홈쇼핑도 이윤을 남겨야 하는 회사이므로 당연히 핫 아이템을 자주 보여주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매출 상승을 위해 의도적으로 노출을 자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노출이 자주 되면  과거 시청했을 때의 메시지가 반복됨으로써 고객에게 익숙한 느낌을 주기 쉽기 때문이다.

수면자 효과(sleeper effect)란 신뢰도가 낮은 출처에서 나온 메시지의 설득 효과가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 처음에는 공신력이 높은 곳의 메시지에 신뢰가 가기 마련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출처보다는 핵심 메시지만 뇌리에 남게 됨으로써 생기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못해도 ‘껌은 역시 OO’라든가 ‘OOO에 손이 가요’ 같은 메시지만 기억에 남는 경우가 그 예에 해당한다.
광고가 시간이 흘러도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핵심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주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면자 효과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아무래도 백제의 무왕이 아닐까 싶다. 그는 아이들을 통해 ‘서동요’를 장안에 퍼뜨림으로써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다.
‘서동요’가 현전 하는 가장 오래된 향가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무왕은 역사상 최초로 SNS를 활용하여 목적을 달성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1400여 년 전에 이미 소셜 네트워크에 대한 개념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문제는 온라인으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에서 이 수면자 효과의 파급력이 생각보다 상당히 강하다는 것에 있다.
SNS에 의도적으로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시간이 흐를수록 그 출처의 신빙성 여부는 사라지고 메시지만 떠돌게 되어 누군가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속칭 ‘카더라’ 통신이 무서운 까닭은 바로 이런 효과에 기인하는 탓이다.

잘못된 정보는 소비자에 대한 기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홈쇼핑에서도 근거 없는 표현이나 증빙할 수 없는 특장점 소개는 철저하게 금지되고 있다.
위반할 경우 관계자 징계나 과징금을 맞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으므로 PD와 쇼핑호스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겉으로 보면 무조건 좋다고 외치는 듯 보여도 올바르면서도 임팩트 있는 메시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 강조 포인트가 시간이 지나도 고객의 머릿속에 남아 다음 방송 시 구매를 하게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세상의 수많은 서동요가 온라인에서 돌고 돈다. 잠에서 깨면 어제 접했던 이야기의 출처는 사라진 채  내용만 남아 그것이 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서동요’를 서동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로 덮고 넘어가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와 음모론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삶의 필수요소가 되어버린 요즘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선화공주가 서동을 몰래 안고 가는 이야기를 클릭하지 않고 배겨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고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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