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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PD Jul 11. 2022

왜 자주 눈에 띄면 한 번은 사게 될까

너무 힘든데 쇼핑은 하고 싶어 (5)

환갑이 훌쩍 넘으신 물리선생님은 꽤나 진지한 표정이었다.

희미한 미소마저 머금은 채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저건... 물리 얘기가 아닌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중력의 법칙에 마냥 충실하던 눈꺼풀이 본능적으로 솟구쳤다.

물리를 포기한 문과생이었지만 색다른 이야기는 놓칠 수 없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대략 이런 말씀을 하고 계셨다.


"그러니까 그냥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 거야. 안녕하세요 하고. 그리고 다음날 또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인사만 해."

"..."

"다음에는 몰래 숨어있다가 그 앞에 나타나서는 우연히 만났다는 듯이 또 인사를 해. 다른 얘기 할 필요 없어. 웃으면서 인사만 하고 지나가는 거야."


선생님은 숨을 한번 쉬시고는 씩 웃으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셨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이성하고 친해지는 거야."


나는 대관절 저게 무슨 말인가 싶어 반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나 그들도 대부분 심드렁해 보였다.

아무래도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들에게는 와닿기 힘든 얘기였던 걸까.


어쩌면 진도나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도.




홈쇼핑에는 반복 노출되는 상품이 대부분이다. 보통은 시간대를 바꿔가며 노출 하지만 비슷한 카테고리의 상품은 비슷한 시간대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식품 방송은 시장기를 느끼며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 6시 전후로 편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이한 것은 늘 비슷한 시간대에 노출을 해도 판매량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매출이 오르는 경우도 제법 된다.


이는 보통 '몇 번 방송을 보다가 어느 날 저거 한번 먹어볼까 하는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처음에는 생소하게 느껴졌던 상품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슬그머니 호기심이 생기고 그것이 구매욕구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가 소개한 '에펠탑 효과'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에펠탑 효과란 처음에는 싫어하거나 무관심했지만 대상에 대한 노출이 거듭될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는 현상을 뜻한다. 초기의 에펠탑은 파리의 흉물로 인식되어 시민들에게 외면을 당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파리의 명물로 자리 잡은 에피소드에서 따온 개념이다.


이런 효과는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를 고를 때도 느낄 수 있다. 평소 마시던 음료 옆쪽으로 진열된 상품에 눈길이 가면서 오늘은 이거 한번 마셔볼까 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CF 광고를 떠올려보면 한층 더 이해가 쉬워진다. TV에서 어떤 광고를 처음 보자마자 그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자꾸 접하다 보면 어느 날 '저거 괜찮을 거 같단 말야'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인 것이다.


물론 에펠탑 효과는 상품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처음에 비호감이었던 연예인이 자주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밀면서 호감으로 변하는 경우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방송가에서는 흔히 '카메라 마사지'라는 말로 이런 현상을 대변하곤 한다. '카메라 마사지'란 신인 출연자가 자주 방송에 나올수록 외모가 점점 좋아진다는 의미인데, 자신에게 어울리는 헤어나 메이크업을 찾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에펠탑 효과와 결코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그날 물리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단순히 마음에 드는 이성과 가까워지는 법의 설파가 그 목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스마트폰은커녕 삐삐도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던 그 시절,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최고의 방법은 최대한 자주 얼굴을 대하는 것이라는 인생의 교훈이 아니었을까.


문자나 SNS로 소통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아무리 메신저로 많은 얘기를 해본들 미소 띤 얼굴로 전하는 '안녕하세요'만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친해지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감사나 사과의 뜻을 전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문자메시지나 SNS를 활용하지 말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자.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법칙, 자주 눈에 띄면 한 번은 (밥을) 사게 된다는 그 시절의 아날로그 법칙이 작용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30년 전 물리 선생님의 그 오묘한 가르침은 내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용 반작용의 법칙'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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