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홈PD Sep 22. 2022

왜 다이어트할 때 먹방을 보게 될까

너무 힘든데 쇼핑은 하고 싶어 (7)

주재원 시절 법인장님 차를 얻어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때 법인장님께서는 뒷좌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열심히 보고 계셨는데 그 모습이 꽤나 진지해 보여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뭘 보고 계세요?"

"어... 이거 먹방인데 이 BJ가 진짜 잘  잘 먹어. 이야, 이걸 다 먹네. 허허..."

"네? 먹방이요?"


평소에 음식을 많이 안 드시는 분이 먹방을 본다니 다소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밌으세요?"

"어. 대리 만족하는 거지. 나는 이렇게 못 먹으니까."


먹방을 제대로 시청한 적이 없었기에 식욕만 더 느끼게 만들 것 같은 영상을 본다는 것이 당시에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최근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면서 바뀔 수밖에 없었다. 과일과 야채 위주의 식단으로 배고픔을 느끼다가 급기야는 먹방을 찾아보게 된 것이다.


'나도 어쩔 수 없네. 배가 고프니까 대리만족을 느끼려고 먹방을 보게 되다니.'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떠올랐다. 먹방 시청이 배고플 때의 대리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전에도 허기가 질 때 먹방을 종종 떠올렸어야 앞뒤가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이제껏 관심도 안 두던 먹방을 다이어트할 때서야 비로소 찾게 된 것일까.




먹방을 즐겨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대리만족, 정확한 용어로는 대상 행동(substitute behavior)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상 행동은 특정 목표가 어떤 장애로 목표 달성이 안 됐을 때, 대신 다른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처음에 가졌던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동이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에겐 타인의 행동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신경 네트워크(거울 뉴런, mirror neuron)가 있는 탓이다. 거울 뉴런의 작용으로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보거나,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자신이 그 행동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까 타인이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 우리의 뇌도 어느 순간 음식을 먹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맛있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출출해지는 심야에 라면 광고가 노출되는 것은 매우 전략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맛있겠다'가 '먹고 싶다'는 감정으로 변하면서 당장의 구매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그들은 몸매 관리를 위해 식욕을 통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의무감은 자체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런 경우 뇌는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기 마련인데, 이때 먹방을 통한 대리만족은 손쉬운 해소 방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먹지 않아도 남이 먹는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의 허기가 달래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많은 음식 콘텐츠 중에서 왜 굳이 폭식을 하는 BJ 영상을 보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에 대한 답으로 '세상은 날씬한 사람을 원한다'는 압박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는 흥미롭다. BJ의 폭식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인 압박에 강렬히 저항하는 모습으로 비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먹방은 다이어트의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식욕에 대한 대리만족뿐 아니라 사회 통념에 저항하는 쾌감까지 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먹방을 보는 사람들의 이유는 저마다 같지 않을 것이다. 그저 많이 먹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보는 사람도 있고, 혼자 밥 먹기 외로워서 먹방을 틀어놓고 식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유야 무엇이든 대부분은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저 사람은 한다는 대리만족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타인의 힘을 빌어서라도 목표 달성의 만족감을 얻으려 한다는 점이 아닐까.




다이어트 시즌이 오면 홈쇼핑에는 예년과는 다른 원료로 만들어진 상품들이 새롭게 선보여지곤 한다.

'음식을 마음껏 먹으면서도 체중이 감량된다'라고 광고하는 다이어트 상품들이 해마다 많이 팔리는 것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전에 판매되던 상품의 효과가 좋았다면 매년 새로운 다이어트 상품이 잘 팔린다는 것이 좀 이상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내게 다이어트를 코칭해주던 선생님의 말을 떠올려 본다.


"먹을 거 다 먹으면서 뺄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우리의 몸은 정직하기 때문에 활동량을 초과하는 음식물을 섭취하면 살은 안 빠져요"


결국 힘들더라도 음식량을 조절하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기본을 따르라는 말이다.


다이어트로 인해 우울해하는 사람들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다시금 기본에 충실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세상에 왕도는 없다'라는 말들은 다이어트에 그대로 적용된다.

몇 달간 기본을 지키면서 10kg 이상 감량해본 사람이 하는 말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중간중간 '먹방'이라는 다이어트 진통제를 맞는 것이야 각자의 자유겠지만.

이전 06화 왜 제로 칼로리 탄산음료 매출이 증가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