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홈PD Oct 14. 2022

왜 9가 들어간 가격은 싸 보일까

너무 힘든데 쇼핑은 하고 싶어 (1)

"선배, 이번 시즌 신상은 좀 힘들 거 같은데요."

"왜?"

"가격이 올라간대요."

"얼마나? 지난 시즌에 칠구였잖아."

"이번엔 구구로 올린다는데요."

"뭐? 팔구도 아니고 구구라고?"


홈쇼핑에서 제일 많이 듣게 되는 숫자는 아마도 '9'일 것이다. 워낙에 9가 들어간 가격이 많으니 PD들은 편의상 99,000원을 구구, 89,000원을 팔구라고 부르곤 한다.


사실 홈쇼핑뿐 아니라 마트나 백화점을 가도 가격표에는 대부분 '9'가 들어있다. 9,900원이라는 가격을 보면 10,000원 보다는 9,000원에 더 가깝다고 여기게 되는 심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런 현상은 하지만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이성은 9,900원이 9,000원보다 10,000원에 더 가깝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물건을 살 때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왜 9가 들어가 있는 가격은 싸게 보이는 것일까.




이런 현상에 대한 원인으로 심리학자인 쉰들러와 아이만은 ‘미결정 효과(under-determination effect)’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미결정 효과는 사람들이 정보를 오랜 시간 기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우선적으로 기억하고, 숫자가 길면 길수록 맨 왼쪽의 것만 기억한다는 이론이다.


인간의 뇌는 효율적으로 작동하게끔 설계가 되어있기 때문에, 빠른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중요한 정보만을 취하고 나머지는 버리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런저런 가격을 접할 때 뒤의 세세한 정보는 버리고 앞자리만 기억함으로써, 이것은 10만 원대, 저것은 9만 원대라는 식으로 굵직한 정보만 흡수하게 되는 것이다.

백화점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상품을 볼 때 세세한 가격까지 기억하면서 쇼핑한다고 상상해보라. 즐거워야 할 쇼핑이 매우 머리 아픈 일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성향이 세일 기간에 구매를 더 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는 뇌의 속성이 합리적인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9가 들어있는 가격이 구매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쯤에서 이런 심리적 현상의 이름이 왜 'under-determination effect'라고 붙여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단어의 뜻으로 짐작해보면 쉰들러와 아이만은 숫자 9가 사람들에게 '아직 결정되지 않았음'을 연상시키는 숫자라고 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9는 9라는 숫자 자체의 의미보다 10에서 하나 모자란 수, 아직 10이라는 완전체에 도달하지 못한 미완의 수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9,900원이라는 가격을 보면 실질적인 숫자의 크기보다 '1만 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인지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왜 '아홉수가 고비'라는 말이 존재하는지, 왜 '아흔아홉 섬 가진 사람이 한 섬 가진 사람의 것을 마저 빼앗으려 한다'는 속담이 만들어졌는지 짐작되는 부분이 있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해 보이는 숫자 9의 이면에는 이처럼 10이 되지 못한 수, 100이 되지 못한 수라는 한 많은 사연이 들어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인간이 되지 못한,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처럼.  




9,900원의 입장에서는 10,000원에 불과 100원이 모자를 뿐인데 9,000원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물이 99도에서 끓지 않듯 임계점을 넘지 못하면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도 든다. 불합격자 중의 1등이 꼴찌로 떨어진 사람과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엄연한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9가 숫자 중 가장 강하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9단'이라는 칭호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단위이며, 99점은 100점과 별 차이 없는 고득점이다. 오히려 100점은 뭔가 기계적인 느낌이 드는데 반해 99점은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보통 물이 넘치는 상황만을 고려할 뿐 넘칠 때까지 들이부어야 하는 물의 양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에디슨이 '수많은 인생에서의 실패들은 자신들이 성공에 얼마나 가까웠는지 깨닫지 못하고 포기한 사람들이다 '라고 한 이유를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성공 직전에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목표를 100점으로 잡되 99점이라는 결과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고, 아흔아홉 섬을 가졌을 때 백섬을 채우려는 욕심을 부리는 것에서 자유로워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10으로 넘어가기 전 상황에서의 조급함이 성공을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정말로 높게 평가하고 격려해줘야 할 것은 100점이 아니라 100점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얻게 되는 99점이 아닐까.


10,000번째 실험에서 성공을 한 에디슨보다 9,999번째 실험에서 실패한 에디슨에게 더 큰 박수가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