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홈PD Jul 27. 2022

왜 중고 거래할 때 값을 깎으면 화가 날까

너무 힘든데 쇼핑은 하고 싶어 (2)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조금 에누리해주실 수 없을까요

-천 원 빼드릴게요. 더 이상은 안돼요

-만약 15,000원에 주실 수 있으시면 감사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네...


어떤 블로거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눈 대화를 본인의 블로그에 올리면서 기분 나빠하던 일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상대가 어떻게 자기 멋대로 2천 원을 깎을 생각을 할 수 있냐며 분노하고 있던 것이다.


아무래도 중고거래 어플을 이용하다 보면 이런 일은 수시로 벌어진다. 제값을 받고 팔려는 판매자와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려는 구매자 간의 피 튀기는 기세싸움.

그러나 과연 둘 사이에 벌어지는 가격 전쟁이 이런 상황의 근본적인 이유인지는 조금 의심스럽다.


그는 정말 단돈 2천 원 때문에 화가 났던 것일까.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유 효과'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소유 효과'란 대상을 소유하고 난 뒤, 그 가치에 대해 그것을 갖고 있기 전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말한다. 머그컵을 잠시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되팔 때 비싼 값을 받고자 한다는 연구결과가 그러한 가설을 뒷받침한다.


소유 효과라고 해서 반드시 손에 잡히는 물건에만 해당하는 개념은 아니다. 하락장에서 보유한 주식을 잘 처분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종목의 가치를 특별히 높게 평가하고 있는 탓이다. 이는 어떤 물건을 사는 것은 이익으로 느끼는데 반해, 자신이 소유한 물건을 파는 것은 손실로 지각하기 때문이라는 게 행동경제학자들의 의견이다.


이러한 손실 회피 성향은 자동차 세일즈 전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동차 판매자는 보통 풀옵션 내용을 먼저 알려주는데, 이는 그렇게 해야 옵션이 하나씩 제거될 때마다 상실감을 크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풀옵션 정보를 듣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이미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니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홈쇼핑이 성장한 배경에는 무료 반품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백화점 등에서 물건을 구매한 후 반품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거추장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홈쇼핑에서는 한 달 이내라면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품을 받아주니 어찌 인기를 얻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지금도 홈쇼핑에서는 일주일 무료체험 같은 프로모션을 내건 상품을 종종 방송한다.

딱 일주일만 사용하고 반품하는 사람이 많으면 큰일 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할지 모르지만 실제 해당 상품의 반품률은 생각보다 낮다.

일주일간 써보면 멀쩡한 상품을 반품하는 것이 오히려 손실로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상품에 하자가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어야겠지만)


예전에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를 외치는 광고가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 것이 왜 소중한 것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우리 것'이란 말속에는 남이 갖고 있지 않은,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이라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그것은 곧 우리라는 무리의 가치를 말해주는 것이며, 그러한 가치는 당연히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대상에는 그 소유자만이 매길 수 있는 가치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중고품이라고 해서 구매자가 임의로 가격을 예단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 언급한 블로거는 어쩌면 물건값을 깎아서라기보다는 자신이 매긴 가치를 깎는다는 느낌에 화를 낸 것인지도 모른다. 나만의 사연이나 추억이 깃든 물건 가치를 상대방이 마음대로 정하는 태도에 기분이 나빴던 것이 아니었을지.


그는 그저 자신이 매겨놓은 가치가 타인의 의해 쉽게 훼손되는 점이 싫었던 것이리라.




어떤 사람이 소유한 물건은 소유하는 그 순간부터 그 사람만의 스토리가 깃들게 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중고거래를 할 때 앞뒤 다 자르고 '얼마에 주세요' 하는 것이 얼마나 거래를 망치기 쉬운 접근방식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얼마에 판다고 내놓았지만 내놓은 가격의 이면에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중고품을 산다는 것은 그 물건과 물건에 담긴 판매자의 사연까지 함께 구매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중고시장의 진짜 매력은 눈에 보이는 저렴한 가격보다 타인의 손이 탄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자녀의 장난감을 판매한 뒤 남긴 누군가의 메시지는 그래서 따스한 여운을 남긴다.


'모쪼록 저희 아이의 추억이 깃든 물건인 만큼 또 예쁜 아이에게로 가서 잘 쓰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늘 행복하세요~'


오늘도 지구의 나눔 온도가 또 1도씨 올라가고 있다.

이전 01화 왜 9가 들어간 가격은 싸 보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