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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PD Dec 07. 2021

왜 그녀는 비싸다고 말했을까

너무 힘든데 쇼핑은 하고 싶어 (3)

방콕에서 방송 총괄 주재원으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어떤 상품의 실적이 좋지 않아 담당 쇼핑호스트에게 왜 그런 것 같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내 질문을 들은 그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한 음절의 태국어로 대답했다.     


"팽.(expensive) "     


상품의 가격이 비싼 탓에 매출이 안 나오고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평범한 답변이었다.     

물론 그런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새로운 세일즈 전략을 구상하고 있던 나로서는 다소 김 빠지는 답변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뒤로도 태국의 PD와 쇼핑호스트들은 판매 부진의 원인에 대해 비싸서라는 얘기를 자주 했는데, 가격 요인 외에 다른 이유를 대는 경우는 별로 없어서 많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왜 그들은 실적이 예상을 밑돌면 가격이 비싸서 그렇다는 이유를 내세웠을까?     

     



전통적인 세일즈 전략에 따르면 구매는 어떤 상품의 기대 이익이 지불하는 비용보다 클 경우에 발생한다고 되어있다.     


즉 사람들은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예상 가치가 가격을 넘어설 때 비로소 물건을 사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이론적인 얘기이기는 하다. 우리가 무언가를 구매할 때 그 기대 이익을 수치화해서 가격표와 비교하지는 않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개념이 모든 세일즈의 바탕이 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고가의 명품 가방이 불티나게 팔렸다는 뉴스를 보면 사람들이 그 가방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세일 기간에 판매율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 상품의 가치는 그대로이지만 낮아진 가격이 그 가치를 하회함으로써 구매를 유발한다고 풀이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홈쇼핑 세일즈 전략의 기본은 기대 이익이 가격보다 크다는 것을 고객에게 인지시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앞서 얘기한 태국의 PD와 쇼핑호스트들이 판매 부진 원인으로 가격을 꼽은 것이 이해가 되기는 한다. 아무래도 가격이 내려가면 기대 이익이 가격을 이기는 부등식을 쉽게 만들 수 있으니까 적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얘기하면 가격을 낮추는 것은 MD의 영역이다. 상품을 판매해서 이윤을 남겨야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고 보면, PD나 쇼핑호스트가 가격이 비싸서 안 팔린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직무유기에 가까운 일이 되고 만다. 그러니 전략을 정비해 매출을 올려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을 수밖에.


물론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안다. 과장된 연출을 하지 않으면서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상품의 기대 이익을 높이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가격을 내리는 것이 훨씬 쉬운 일임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쇼핑 PD와 쇼핑호스트라면 고객이 느낄 수 있는 기대 이익을 최대치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늘 기울여야 한다. 그러한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상품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발굴해 표현하는 역량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대개 일류 PD와 쇼핑호스트들은 이런 부단한 노력에 의해 탄생되곤 한다.     


매트리스의 푹신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 위에서는 계란도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연은 이제 홈쇼핑의 고전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비슷한 시연이 수십 가지는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연 방법들에는 하나라도 더 판매를 하고자 하는 누군가의 고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5년 전 비싸서 안 팔린다고 말했던 태국의 쇼핑호스트는 지금 베테랑 호스트로서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저조한 판매 실적의 이유로 가격을 얘기하고 있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팀의 주축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보다 전략적인 시각으로 실패 요인을 분석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가격 때문에 매출이 안 좋다는 이유를 계속 댔다면 결코 핵심 멤버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이제 같은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가격은 나쁘지 않았는데, 제품이 고객에게 덜 어필된 것 같아. 시연 방식을 좀 바꿔봐야겠어."     


고수의 답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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