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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PD Oct 29. 2022

왜 힘들 때 쇼핑을 하게 될까

너무 힘든데 쇼핑은 하고 싶어 (12)

“어, 선배. 이 옷은 전에 못 보던 건데. 새로 샀나 봐?"


가끔 만나는 선배가 유독 새것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약속 장소에 등장했다.


"응, 셔츠랑 바지 좀 샀다."

"~  좋은  있었나?”


하지만 돌아오는 선배의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아니, 열받잖아~"


열받아서 옷을 샀다는 말에 웃음이 살짝 나오기는 했지만 그 말속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있음을 알고 있다.

직장생활이 힘들다는 말을 전부터 해왔으므로 아마도 업무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쇼핑을 했든 뭘 했든 스트레스를 풀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때 풀지 못하면 병이 될 수 있을 테니.


사실 힘들고 지쳤을 때 쇼핑을 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쇼핑이 일종의 치료약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와 상담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알약을 삼키는 것도 아닌 쇼핑 행위가 어떻게 스트레스 치료약이 될 수 있는지.


왜 우리는 힘들 때 쇼핑을 찾게 되는 것일까.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 중시 편향'(present bias)이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현재 중시 편향이란 즉각적으로 욕망을 충족하려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려는 것으로, 미래에 비해 현재를 중시하는 태도이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거나 미래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성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 불편한 감정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 즉 슬픈 기분이 들면 즉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당장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도 있고, 산책을 할 수도 있다. 조깅 같은 가벼운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쇼핑은 이런 것들과는 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행위 속에는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는 무의식적인 심리가 작용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힘들고 상처를 받는 이유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공교롭게도 (특히 직장인일수록 더욱) 내가 부족해서, 내가 더 잘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진실은 그렇지 않음에도 그렇게 생각들을 해버리는 것이다)

그때 왜 그렇게 바보 같이 말했을까, 나는 왜 그 사람과 싸우지 못하고 물러섰을까 등등. 그럴 때마다 느끼게 되는 자괴감이 스트레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우울할 때 쇼핑을 하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는 느낌과 함께 도파민 분비로 기분이 좋아지니 어찌 그 방법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구권에서는 쇼핑을 통해 스트레스 해소와 심리적 치료를 하는 행위를 '쇼핑 치료(Retail Therapy)'라고 한다. 실제로 쇼핑은 우울감이나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게 해 기분이 나아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쇼핑으로 인한 기쁨이 과도해지면 여러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필요한 물건이 없는데도 허전함을 느껴서 하는 쇼핑은 구매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과소비로 변질되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구매한 제품은 활용도가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중에 '내가 이걸 왜 샀지'하며 후회하는 상황이 적잖게 벌어지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러한 쇼핑으로 얻는 '기분 좋음'은 일시적이라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힘들 때마다 하는 쇼핑이 과소비가 되어 또 다른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은 피해야 하는 상황이기는 하다.

그런 위험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푸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TV를 틀면 홈쇼핑이 곳곳에서 방송되고, 스마트폰 앱만 열어도 쇼핑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소비를 겁낼 필요가 있을까.

앞서 말했듯 불필요한 소비가 문제가 되는 것이니만큼 필요한 것을 구매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구매행위 자체가 허전함을 달래주는 방편이라면, 평소에 사려고 했던 것을 우울할 때 구매하는 것이 그렇게 어리석은 소비활동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즉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불필요한 지출이나 충동구매이지, 소비 자체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다이어트에 도움이 안 되는 군것질도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기 위해 일부러 카페를 찾아가기도 한다. 안 해도 되는 일에 돈을 썼다고 낭비라고 할 수 있을까. 미래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게 행복감을 줄 수 있는 현재의 행위도 마찬가지로 소중하다.


결국 소비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뭐든지 그렇겠지만 선을 넘지 않는 적당한 지출은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인이 받는 스트레스를 당장 풀고 싶다면, 도저히 퇴근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다면, 스마트폰으로 사고 싶었던 것을 주문하는 것이 5G 시대의 또 다른 현명한 소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힘들고 지칠 때 쇼핑은 해볼 만한 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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