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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PD Oct 24. 2022

왜 종료 직전에 주문이 가장 많이 몰릴까

너무 힘든데 쇼핑은 하고 싶어 (11)

"잘 안 나가고 있죠?"


쇼핑호스트가 이어 피스를 통해 근심스럽게 물어왔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까 최대한 남은 시간을 강조해볼게요. 이거 저번에도 막판에 콜이 떴던 상품이에요."

"오케이."


그녀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종료 시간이 5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네요. 방송이 끝나면 이 조건은 사라집니다..."


그러자 콜 그래프가 조금씩 우상향 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방송 종료를 앞두고 주문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예측한 대로군!'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방송이 끝날 때 프롬프터에 이렇게 타이핑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목표 달성!!!]



홈쇼핑 생방송을 진행할 때 자주 벌어지는 광경이다.

최후의 1분까지 쥐어짜야 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목표를 달성하면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고객들이 일찌감치 주문을 해주면 편할 텐데라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좀처럼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대부분 종료시간이 임박했을 때 주문이 들어오는 탓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홈쇼핑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불변의 법칙처럼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얼핏 당연해 보이는 이 현상도 생각해보면 이상한 부분이 있다.

그 모든 사람들이 결정 장애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텐데, 왜 고객들은 늘 종료시간이 임박해서야 주문을 하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화점의 SALE 기간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SALE 기간에 몰리는 까닭은 해당 기간이 지나면 할인 혜택을 못 받게 되므로, 그 혜택을 받기 위해 기간 내 구매를 하려 한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으니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백화점 등의 대규모 세일 행사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의외의 조사 결과도 있다.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인데, 좋은 물건을 '나만'저렴한 가격에 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사람들을 신경질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FOMO(Fear Of Missing Out :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현상은 1996년 마케팅 분야에서 처음 인식된 개념으로, 대부분의 소비자는 어떤 기회나 기쁨을 놓칠 가능성을 두려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좋은 기회를 얻기 위해 SALE 행사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이유일 수 있는 것이다.

즉 '좋은 기회를 붙잡고 싶은 마음'과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지 않는가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특정 요일이나 시간대에 접속하면 할인을 해주는 이벤트를 생각해보자.

우리를 그런 행사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 할인액에 대한 기대감일까. 혹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 손해로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


쇼핑객들이 쇼핑 도중 느끼는 가장 우세한 감정이 '흥분'이라는 실험 결과가 있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왜 지난 25년간 홈쇼핑 고객들이 방송 종료 시점에 주문을 하게 되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프로그램의 종료 타임이 0:00으로 변해갈수록 사지 못하면 손해를 볼 것 같은 감정이 조바심을 유발하고, 그 조바심이 흥분의 감정을 불러와 주문을 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일련의 흐름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매진 임박'이라는 표현을 했을 때 주문이 급증하는 이유도 명확해지는 것 같다.(물론 '실제 매진이 아닌데 매진될 것 같다는 뉘앙스로 말해서는 안된다'와 같은 심의 준수 사항이 있음을 밝힌다.) 시대가 바뀌고 주 고객의 연령층이 바뀌어도 동일한 현상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본능이란 것이 참으로 질기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내가 얻게 될 이익'보다 '나만 얻지 못하게 될 이익(손해라고 인식)'에 훨씬 민감한 존재라는 점은 어쩐지 씁쓸하게 만든다.




마케팅 개념에서 출발한 FOMO현상은 최근 'FOMO 증후군(syndrome)'으로 발전해 '소외 불안증후군'이나 '고립 공포증'으로 해석되고 있다.


소셜미디어가 부상하면서 타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게 됨에 따라, 사람들은 멋지고 흥미로운 일이 지금 어딘가에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는 불안한 감정을 갖는다고 한다. 즉 그런 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신은 뒤쳐지고 제외되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타인의 멋진 삶이 담긴 사진 한 장과 나의 일상 전체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비교를 하려면 그 사람의 일상 전체와 비교를 해야 할 테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사진 한 장과 나의 삶 전체를 비교하고 불안해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남들은 재미있게 살고 있는데 나만 혼자 이게 뭐지'

'남들은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데 나만 생활고에 시달리는 걸까'


자신의 삶에 하등 도움이 안 될 이런 비교를 하는 사람들에게 FOMO의 반대 개념인 JOMO(Joy of missing out : 이 순간에 집중하는 즐거움)를 알려주고 싶다.

다른 기회나 다른 사람들의 연락에 미련을 갖지 않고 현재를 즐기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SNS와 스마트폰을 멀리하는 것이 우선 과제가 될 것 같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알려주고 싶은 비밀이 있다.

홈쇼핑에서 방송 중 조건이라고 해도 종료 후에 얼마간은 주문이 가능하게 열어놓고 있고, 나중에 더 좋은 조건으로 살 수 있는 경우도 많다. 또 세일을 했지만 다음 방송에는 신상품이 편성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주어진 시간 내에 구매를 못해도 큰일 나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남들은 나만 빼놓고 재미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다른 루트를 통해 알게 된 그들 삶의 실체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았다. 오늘 그가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다 해도 내가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을 때 그가 외로웠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이 시간이 아니면 다시 만나기 힘들 것처럼 말하지만 다시 비슷한, 어쩌면 더 좋은 조건에 살 수 있는 홈쇼핑 상품처럼.


어쩌면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이 종료될 즈음에 '수고하셨습니다! 목표 달성!!!'이라고 한 줄 쓸 수 있느냐인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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