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직장인이 읽는 이솝우화 (1)
어느 겨울날 한 농부가 추위로 뻣뻣하게 얼어버린 뱀을 보았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나 뱀을 집어서 가슴팍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훈기로 타고난 천성이 돌아온 뱀은 은인을 깨물어버렸습니다.
치명적이었지요. 죽으며 농부가 말했습니다.
"고약한 짐승을 측은히 여겼으니 당연하지."
이야기를 접한 대부분은 뱀을 품은 어리석은 농부를 탓한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농부를 탓할 수 있을까.
만일 뱀이 귀여운 다람쥐로 위장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그 고약한 본성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세상을 조금만 살아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악인은 얼굴에 자신의 악함을 곧이곧대로 써놓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를 읽고 착잡했던 까닭은 선한 의도를 배신당하며 쓰러져간 농부의 모습에서 착한 직장인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쟁터로 대변되는 직장에서 마음씨 좋은 직장인들은 오늘도 '다람쥐의 모습을 한 뱀'에게 당하며 살지 않던가.
'당하지 않기 위해 너도 악해져라'는 식의 조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타고난 천성이 선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변할 수 있으면 천성이 아닌 탓이다.
뱀을 살리고 싶었던 농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의 가슴팍이 아닌 어디 난로 근처에 던져놓고 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천성은 유지하되 자신의 목숨에 해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의 선의.
선해 보이는 사람도 믿기 힘든 세상이다.
하물며 악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고 이해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는지.
악하다고 평가받는 사람과 적당히 거리를 둘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절대 악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는다.
기원전 6세기 무렵에 쓰인 이솝 우화가 수천 년 후의 대한민국 직장인을 겨냥했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무조건 착하고 바르게 살아라가 아닌, 현실에 걸맞은 처세술에 관한 풍자가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어린 시절 '토끼와 거북이'에 웃으며 책장을 덮었던 이솝우화를 성인이 되어 다시 펼쳐봐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