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직장인이 읽는 이솝우화 (4)
사자가 농부의 딸에게 반해서 청혼을 했습니다.
농부는 딸을 맹수에게 시집보낸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지요. 그러나 감히 거절을 못했습니다.
딸의 남편감으로는 십상이지만 이빨을 뽑고 발톱을 깎지 않으면 딸을 줄 수가 없다고 성가시게 구는 청혼자에게 말해서 어려움을 피했습니다. 딸아이가 이빨과 발톱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요.
사자는 너무나 반해 있었기 때문에 선뜻 이러한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그러나 사자가 다시 나타나자, 농부는 업신여기며 몽둥이로 사자를 내쫓았습니다.
반한 대상에게 모든 것을 바친 이의 운명이 비참하게 끝난다는 것, 편치 않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짐승 주제에 인간을 사랑한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냥 어리석은 사자라고 비웃을 수 있을까.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빨과 발톱'이 '없어진' 사자이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의 얘기인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이란 그것이 사라졌을 때 나 자신다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이야기를 읽고 웃고 있을 수만은 없는 까닭은, 우리도 어느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삭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능력을 내가 가고 싶은 부서나 자리로 가기 위해 쉽게 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영업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중앙 관리직으로 가기를 희망한다든가, 어학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숫자를 다루는 자리로 가려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직장이나 자리에 반해 자신의 특성을 팽개치는 모습은 좀 안타깝다.
이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라는 개념과는 좀 다르다.
최소한 직장 내에서 자신의 특성이 발휘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스스로 빛이 날 수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장점을 쉽게 내버리는 일이 벌어지는 까닭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를 잘 모르는 탓도 있다.
심하게는 자신의 장점을 혼동하는 경우마저 존재한다.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좋은 사람이 스스로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란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것임에도)
자신의 장점이나 특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팁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와 이익관계가 전혀 얽혀있지 않은)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해주었던 칭찬이 무엇인지 떠올려보자. 그것이 곧 나의 타고난 특기이자 장점일 확률이 높다.
어찌 됐든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자기 객관화로 귀결된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은 절대 자신의 정체성을 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그것을 버리는 순간 자신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의 사자가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었다면 이빨과 발톱은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인간을 사랑했을 것 같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