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직장인이 읽는 이솝우화 (3)
두 친구가 함께 여행하고 있을 때 곰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한 사람은 제때에 나무로 올라가 거기 숨어 있었습니다.
곧 잡히게 되리란 것을 알고 또 한 사람은 땅바닥에 누워 죽은 체하였습니다.
곰이 코를 대고 온통 그의 냄새를 맡는 사이 그는 숨을 죽였습니다. 곰은 시체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었으니까요.
곰이 떠나버리자 나무에 올라갔던 사람이 내려와 곰이 귀에 대고 무슨 소리를 했느냐고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위험에 처한 찬구 곁을 떠나는 사람과는 여행을 다니지 말라고 말했다네."
유명한 이 우화는 위기의 순간 함께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친구 간의 의리임을 알려준다.
그런데 친구라는 개념을 직장동료로 확대하면 섭섭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말해두고 싶다.
즉 아무리 아무리 친하다는 느낌이 들어도 직장동료는 동료일 뿐 친구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평소 직장에서 주변인들을 돕던 사람이 정작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도움 받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가 사람이 아닌 조직일 경우에도 적용된다. 소위 몸을 갈아 넣는 수준으로 회사일을 열심히 했어도 곤란한 일을 겪게 되었을 때 회사는 외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 잘하던 지인이 억울한 이유로 소송을 당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의 억울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를 해고하는 방식으로 일을 마무리지었다.
그 방법이 제일 쉽고 깔끔했기 때문이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 나서서 그를 변호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남을 돕지 말아라', '받는 만큼만 일해라' 같은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남을 돕는 것은 선한 일이고 승진을 하고 싶으면 열심히 일하게 되는 법이니까 그 행위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남을 돕든 회사 일을 열심히 하든 '내가 이렇게 했으니 남도 나에게 이렇게 대해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버리라는 것이다. 은연중에 갖게 된 그러한 기대감은 나중에 배신감으로 변할 수도 있다.
말로 이해와 공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의 희생까지 감수하면서 나를 돕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마냥 비난할 수도 없는 것이 다들 자기 코가 석자인 탓이다. 함께 나서다가 직장을 잃거나 하면 당장의 생활이 막막해지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러니까 애초에 동료애라는 것은 감내할 수 있는 수준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직장 내에서라면 곰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나라도 나무 위로 뛰어올라가는 것이 맞다. 동료가 쓰러졌더라도 내가 살고난 다음 나중에 그를 업고 뛰는 게 차라리 낫다. 같이 위험에 처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회사는 언제나 그렇듯 냉혹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조직이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
최악은 둘 다 죽는 상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