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남편말 번역가
회사에 있는데 전화 진동이 울린다.
네모난 액정 화면에 지나가는 글자 OO School. 아이 학교다.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 첫째 콧물이 좀 났는데, 그것 때문인가? 둘째가 뛰어놀다가 다친 건가? 어쨌든 나는 지금 못 가는데, 남편은 가능할까?'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끊기기 전에 통화 버튼을 누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오피스 직원의 목소리. 아이 서류 하나가 빠져서 다시 제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입학할 때 다 챙겨서 낸 것 같은데… 이제야 연락이 오다니. 그래도 학교로 당장 달려오라는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 서류 때문에 남편과의 채팅이 시작됐다.
“학교에서 그 서류 내야 한다던데, 어디로 연락해야 하지?” 내가 물었다.
“아. 그거 내가 신청할게.” 남편이 대답했다.
“응. 낸 것 같은데 없다고 하네. 알겠어. 고마워~”
“수고하십시오.”
...................???
수고… 하십시오….????
그 말 나한테 한 거 맞아? 거래처 직원이랑 헷갈린 거 아니고?
세상 부드럽게 대화하던 연애 시절의 그는 어디로 가고 거래처 직원 아니, 그냥 편의점 직원분께 인사하듯 다섯 글자를 보내다니.
아무리 다시 일에 집중하려고 해도 머릿속엔 그 말이 메아리쳤다.
수고하십시오~ 수고하십시오~ 수고하십시오
네이버 국어사전과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업무상 만나는 관계에서 쓰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그래, 뭐. 좋아. 우린 같은 회사(가정)에서 같은 목표(경제, 육아)를 가지고, 같이 일하니까 ‘업무상’ 맞네. 그러니까 우리는… 회사 동료...?'
근데… 자꾸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왜지?
결국,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영혼 1도 안 담긴 ‘사랑해’를 받았다. 이모지 하나 없이, 마침표나 물결표시도 없이 딱 세 글자만. 이래도 찝찝하고, 저래도 찝찝한 건… 나만 이상한 걸까?
부부 사이의 말 한마디는 사실 특별할 필요가 없다. 다만, 상대방을 ‘동료’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으로 대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짧은 인사도, 무심한 대화도 그 마음이 담겨 있다면 충분하다.
그 다섯 글자가 “사랑해”처럼 들릴 수 있도록.
번역 결과
고맙긴. 점심 맛있게 먹고 이따 집에서 봐. 사랑해.
(아니, 이 평범한 말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