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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Mar 16. 2024

비 오는 날 차가 막히면,

S#3. 내 상상 VS 아이들의 상상


S#1. 2024년 오클랜드의 한 도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은 늘 그렇듯 차량이 많다. 어디를 가든 맑은 날보다 10~15분 정도는 더 걸린다.


수영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비도 오고, 신호도 연달아 걸리면서 정체시간이 길어졌다. 그러자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들이 상상을 시작했다.


“엄마. 이 앞에 있는 차들을 쫙 밀고 갈 수는 없을까? 아니면 쿵~퐈~슉슉! 이렇게 해서 착! 팍~이렇게 해서 푹! 한 다음에 우주까지 날아가서 챡챡~탁탁하는 거야! ”


아들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7세 남자아이들의 대화에는 주어와 서술어보다 의성어, 의태어가 더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운전 중이라 시선도 뒤로 돌리지 못하니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응~그래.' 간단하게 대답하자 나의 어릴 적 상상이 떠올랐다.



S#2. 1990년 서울의 한 도로


서울은 언제나 그렇듯 차가 자주 막혔다. 막히는 차량 안에서 답답함을 느낀 나는 이런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 답답해. 차가 또 막히네. 그럼 날개버튼을 눌러서 날개를 펴자.'

꾹- 운전석 앞 빨간 날개모양의 버튼을 누르자 차가 공중으로 살짝 올라간다. 그리고 차 양쪽에서 커다란 날개가 나오더니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푸른 하늘과 어우러지는 하얀 구름, 시원한 바람.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막히지 않고 기분이 상쾌하다. 순식간에 도착한 차는 날개를 접고 자동 주차를 한다.


우리 차가 날아다닌다면 다른 차들도 날기 시작하겠지? 그럼 하늘길이 생길 거야. 하늘에도 교통질서가 있고, 줄지어 날아다닐 거야. 그럼 신호등은 어떻게 세우지?


하늘에서 사고가 나면 무척 위험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날개가 펴지는 동시에 차 허리에 튜브를 둘러주자. 서로 부딪쳐도 튜브로 인해 또~잉~ 튕겨나가게 말이지. 아! 그리고 불안하지 않게 튜브끼리 부딪치면 아기들이 신는 신발에서 소리가 나듯 "삐익-삐익-' 귀여운 소리가 나는 거야. 큰 차는 무겁게 '뿌익-', 작은 차는 귀엽게 '삐약-', 오토바이나 자전거는 비눗방울 터지는 '뽁!" 소리가 나는 것도 괜찮겠어.


하나의 상상에 또 하나가 더해지고, 또 하나가 더 해지다 보면 머릿속은 금방 상상들도 가득 찬다. 그러다 보면 차량정체가 조금씩 끝이 나고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S#3. 1996년 김포공항


출장을 다녀오시는 아빠를 픽업하기 위해 가족이 길을 나섰다. 저녁시간이었고,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 역시나 차가 막혔다. 나는 빗길에, 많은 차량에, 엄마의 장거리 운전이 겹쳐져 마음이 조금 불안했다.


하지만 엄마는 노래를 따라 부르시며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이 좋아서였을까, 며칠 보지 못한 아빠를 만나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엄마의 모습에 나의 마음은 금세 편안해졌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 그 팝송 리듬을 아직 기억한다. 제목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리듬 한 부분, 소절(정확하지도 않은) 한 부분이라 아직도 찾지 못했다. 뭐, 노래 제목과 가사를 모르면 어떠랴


그 밤, 까만 한강에 비추던 노란 가로등 불빛과 자동차 지붕을 노크하듯 두들기는 빗소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한 팝송, 그리고 그 노래를 따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


그 분위기와 느낌만으로 나는 비 오는 날 차에 타면 그 편안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싸는 게 느껴진다.



S#4. 2024년 오클랜드의 한 도로


의성어와 의태어로 가득 쌓인 아들의 문장과 달리 머릿속에는 얼마나 많은 장면들이 떠오르고, 사라지는 중 일까? 내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크고, 멋지고, 진지한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가만히 상상 중인 아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 볼륨을 한 칸 낮췄다. 그 옆에서 역시나 지루해하던 딸은 학교 가방과 수영가방을 주섬주섬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집에 도착하면 빨리 내리기 위해 짐을 미리 정리해야지~" 아들보다 조금은 더 현실적인 딸의 머릿속에는 또 어떤 상상이 펼쳐지고 있을까? 따뜻한 저녁을 맛있게 먹으며 가족이 모두 웃는 모습? 또는 다가오는 휴일에 침대에 누워 실컷 뒹구는 모습?


그 상상이 어떻게 펼쳐지든 밝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펼쳐지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에게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엄마가 되길.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차량 정체가 서서히 풀리며 차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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