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 84
'응?! 이 사람... 왜 이러는 거지?'
처음 화면을 통해 본 당신 모습은 웹툰을 그리다 잠이 들고, 회사 화장실에서 씻던 모습이었어요. 나와는 너무나도 다르고 달라서 사실 관심이 없었어요. 그게 아주 오래전 일인 것 같은데, 오랜만에 화면을 통해 마주한 느낌은 아주 많이 다르더라고요.
New York City Marathon / 42.195km
최근에 당신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미국으로 날아갔더라고요. 가을이 끝나갈 무렵이었을 텐데 기세등등하게 반바지를 입고 말이죠. 나였다면 최소 3일 전에는 도착해 시차적응도 하고, 지역도 살펴보고 했을 텐데, 아마도 바빠서 그랬을 테죠. 그래도 사전등록을 놓치지 않았고, 멋지게 번호표를 받았어요. 물론 밤잠은 잘 못 잤지만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 나오는 토끼처럼 경기장 근처에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였으니 다행이에요.
해외로 나가면 그 나라의 문화를 느낄 수 있어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름처럼 예의를 중시하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한국 문화가 있다면 외국의 문화는 참 에너지 넘치고 자유롭죠. 아마 뉴욕은 더 그랬을 것 같네요. 그래서 시작부터 기운 넘치게 큰 소리로 응원도 했을 거고요
4시간 안에 도착하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그것을 위해 오랜 시간을 연습했지만 시차와 컨디션, 긴 언덕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던 모습을 봤어요.
아마 그때 당신은 결과를 이미 예상했는지도 몰라요. '어쩌면 안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결승선에 들어오기까지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속이 안 좋기도 했고, 심장이 터질 것도 같았고, 다리가 마비된 듯 움직이기 힘든 순간이 찾아왔을 때도 당신은 포기하지 않더라고요.
42.195km를 뛰는 그 영상을 보며 점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라톤이라고는 10km까지 뛰어본 게 전부인 내가 그 느낌과 고통을 감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여러 번의 흔들림에서도 끝까지 해내는 모습에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인터뷰에서 당신은 목표였던 '4시간'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더라고요. 그래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당신에게는 결과보다 중요한 과정이 있었잖아요.
한국에서 오랜 시간 연습을 해왔고, 티켓을 사서 뉴욕으로 향했고,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렸어요. 결승선을 통과했잖아요. 그 과정을 어떻게 한 순간의 결과에 비할 수 있겠어요.
당신은 그것만으로도 인정받을만해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결국은 해냈노라고 자신을 인정하고, 칭찬해 주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의 한결같은 모습을 내가 오해한 것일까요, 당신이 점차 변화된 것일까요.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응? 이 사람... 참 멋진 사람이네.'
자, 여기 포춘쿠키 하나 드릴게요. 맛있게 드세요!
당신이 달린 모든 거리에 꽃이 피어났어요. 그 꽃을 보며 밝게 웃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네요. 이제는 당신이 웃을 차례예요. 곧 웃을 일이 생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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