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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Aug 08. 2023

지인도 없는 낯선 곳에서 맨땅에 헤딩한 이유

우리가 이민을 선택한 이유

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한국을 떠난 건 34살 때다. 그것도 6개월 된 둘째를 아기띠에 메고 비행기에 올랐다.

적은 나이도 아니었고, 쉽게 결정한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생각했다. 차로 30분이면 닿는 곳에 양가 부모님도 계셨고, 남편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났다.



남편과 나는 오랜 친구였다가 28살에 연인이 됐다. 우리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데이트했지만 대화 내용에는 해외, 유학, 워킹홀리데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어있었던 것 같다. 남편은 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었고, 나는 다양한 기회로 10여 개국 이상의 나라를 여행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해외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고작 그 짧은 경험들로 이민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나는 하루에 15시간이 넘는 근무시간과 그에 어울리지 않게 받지 못했던 야근, 주말근무 수당, 그리고 이른 아침 콩나물시루 출근으로 겨우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마른 갈대와 같았다. 남편의 직장은 미리 정해진 스케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행사나 중요한 날에 갑작스러운 호출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 스트레스 컸었다. 스트레스 없는 직장인이 어디 있겠냐만은,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그리 밝게 그려지지 않았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우리 행복한 거 맞지?


어느 날 남편이 같이 해외로 나가자는 제안을 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니 같이 나가서 공부하고, 일도 하자는 것.

그런데 서른으로 접어든 나로서는,


결혼이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 공부를 하자고?

20대 때야 고민 없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지만 나이 서른에 모든 걸 정리하고 유학? 꼭 하고 싶은 공부가 있었던 것도 아닌 나에게 갑작스러운 유학은 무모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행복을 찾고 싶은 마음은 같은데, 방향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오랜 대화와 고민이 이어질수록 우리는 이별이라는 종착역을 따라 걷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행복이라는 단어를 포기시킬 수는 없으니. 각자의 행복을 찾아 떠나자고!


그렇게 우리는 여러 번의 결정과 후회의 반복을 거쳐 결국 결혼을 선택했다.




그 후로도 이민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회사 승진과 아이가 생기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일상에 자리 잡았다. 그러다 첫째가 생기고 2살이 됐을 때쯤, 엄마로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옆집 엄마들은 지금부터 영어유치원에 대기 걸어야 한다고 했고, OO브랜드 교구를 지금 넣어줘야 한다고 했다. 어느새 교육열에 휩쓸려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워낙 커다랗고 가벼운 귀를 가진 나는,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이것저것 시켜야겠다며 얘기를 했었고,

세상 누구보다 무거운 귀를 가진 남편은, 아이가 커서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할 때 시키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교육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어깨를 누르기 시작했다.




딱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우리의 이민 이유.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문제들에서 벗어나 조금 더 편안한 자유와 선택을 찾아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는 우리 부부의 가치관을 가지고 맞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캐나다나 미국이 아니라 뉴질랜드를 선택했냐고?!

우리가 이민을 고려할 당시 이민자들에게 가장 오픈한 나라가 뉴질랜드였고, 깨끗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뛰어놀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인도 없는 낯선 곳으로 걸어 들어와 맨 땅에 헤딩했다.

그래서 많이 외롭고, 많이 고단했다.

그런데 삶이 익숙해지니 이런 생각이 든다. 오길 잘했네, 진작 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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