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마트와 급식 문화
라면도 못 끓이는 여자. 바로 나였다.
20대까지 라면물은 한강으로 만들었고, 과일은 직접 깎아본 적이 없었다. 엄마라는 신 같은 존재가 곁에 있었으며, 배달은 얼마나 잘 되던가! 그러다 결혼을 했고, 나에게 시댁이라는 장소가 생겼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명절날 고모님들, 고모부님들, 할머님, 사촌들까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어머님이 과일을 깎으라고 칼과 과일을 내미셨다. 그래도 집에서 엄마가 깎는 걸 보기는 했기에 당황하지 않은 척, 사과를 들고 깎기 시작했는데...
미끌!
떼구르르르~~~
툭, 투투둑!
......................................
먼저 사과를 쪼개지 않고, 껍질부터 돌려 깎다가 그만 손에서 미끄러져 사과가 식탁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결국 칼은 고모님 손으로 넘어갔고, 그때의 고요한 정적은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다. 그 정도로 요리에 관심도 없고, 못했었다.
뉴질랜드에 와서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는데 모닝 티(Morning Tea)와 런치박스(Lunch box)를 싸 오란다.
모닝티는 뭐지? 아이가 티를 마시지는 않을 텐데... 둘째 분유먹이며 검색 시작.
런치박스는 어떤 걸 써야 하지? 뭘 싸줘야 하지? 밥? 빵? 여기도 보온 도시락에 싸갈 수 있나? 둘째 재우며 검색 시작.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검색으로 생활을 배워나갔다. 검색 후 일단 마트에 장을 보러 간다.
뉴질랜드는 커다란 체인 마트가
Pack and Save, Woolworths(Countdown), NewWorld
이렇게 3군데 있다.
마트별로 장점과 단점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목적에 따라 다른 마트를 간다.
품질 좋은 곳: NewWorld
가격 좋은 곳: Pack and Save
집 앞에 위치해 빠트린 물건 사러 가는 곳: Woolworths(Countdown)
대량 묶음으로 사기 좋은 곳: Costco
야채나 과일값이 너무 비쌀 때 가는 곳: Tai ping 중국마트
한국 음식 먹고 싶을 때 가는 곳: 한국 Wang마트, H마트
마트에서 장을 보고 냉장고, Cupboard Storage에 잘 정리해 두고, 아침마다 도시락을 싼다.
한국에서 도시락이라고는 싸본 적이 없기에 사진 보고 얼추 흉내는 냈지만, 나 닮아 한식을 좋아하는 아이가 빵과 과일만을 맛있게 잘 먹고 올는지 궁금했다. 그날을 시작으로 도시락을 싼 지 벌써 6년째. 아침마다 아이 둘 도시락에 남편 도시락, 일 할 때는 내 도시락까지 4개를 싸기도 했다. 2023년에 도시락이라니! 급식이 없다는 사실에 뉴질랜드 교육시스템이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이곳에 살다 보니 이해가 됐다.
사람마다 유제품 못 먹는 사람, 고기 못 먹는 사람, 글루텐프리만 찾는 사람 등 다양한 알레르기와 식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살면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그 음식을 찾아 달려가거나(가까운 곳에는 한식당이 많이 없다. 보통 1시간 거리)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짬뽕, 짜장면 만들기는 기본이고, 순댓국, 지리, 매운탕, 훠궈, 심지어 김치도 종류별, 장아찌도 종류별로 직접 담가먹는다. (너무 먹고 싶으니까...) 그렇게 나는 등 떠밀리 듯 요리를 매일 하게 됐고, 텀 브레이크 때는 삼시 세끼, 코비드 19 때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가족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요리를 잘한다고 말해주니, (맛있는 음식 만들었을 때만)
뭐 어쩔 수 없지. 앞으로도 그냥 해야지. 그리고 한국 가면 매일매일 배달해 먹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