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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 Oct 27. 2022

18. 취미

헤이 씨리, 왓 쏭 이즈 디스? 

나의 취미는 노래 수집이다.


어느 장소에서 좋은 노래가 들리면 그 노래가 뭔지 알아내는 것이다. 보기엔 쉬워보이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우선 내 귀를 끄는 노래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켜 시리를 부른다. “헤이 씨리, 왓 송 이즈 디스?” 하지만 노래가 짧을 땐 샤잠(Shazam)을 바로 킨다. 가끔 이렇게도 노래를 찾지 못하면 마지막 수단으로 멜론으로 노래 검색을 하는데, 이 세 단계를 거치면 보통 노래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가끔 특수한 상황이 있다. 퀘백에 갔을 때다. 길거리를 걷다 우연히 들린 가게에서 아름다운 불어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스피커와 가까운 가게의 구석으로 가 몸을 웅크리고 시리를 불렀다. “헤이 씨리!”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았는지 시리는 답하지 않았고, 멜론은 이 노래를 처음 듣는다는 둥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를 계속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급하게 가게에서 나오는 노래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리는대로 메모장에 노래 가사를 한국어로 쓰기 시작했다. 쟈 통브레…


숙소에 돌아와 핸드폰에 들어있던 녹음파일을 컴퓨터로 옮기고 다시 한 번 들려주자 시리는 노래를 찾아냈다. Jill Barber의 J'attendrai 라는 곡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퀘백에서 그녀의 샹송앨범을 쭉 들었다. 그렇게 그 노래는 퀘백의 기억이 되었다. 지금도 그 노래는 22살 여름 화장기 하나 없이 회색 스카프를 두르고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정처없이 구시가지를 돌아다녔던 그때의 나를 조우하게 해준다.


22살 가을 퀘벡에서 샹송과 함께


당신은 아마 왜 길거리 음악 같이 쓸모 없는 것에 힘을 쏟느냐며 혀를 찰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쓸 데 없는 취미에 힘을 쏟는 어른들이 존경스럽다. 쓸모 없는 것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건 내 삶에 중요한 것들이 제대로 기능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나는 당신이 길거리에서 음악이 들렸으면, 그래서 거기 잠시 멈춰 음악 수집 같이 쓸모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렇게 그때의 당신을 음악에 보관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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