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 홀이 무척 그립다. 올봄 얼마나 많은 공연을 보려고 했는데 코로나 19로 문을 닫아 머나먼 님이 되어버렸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우리네 인생! 아들도 며칠 전 엄마랑 함께 카네기 홀에서 공연 봤던 추억이 새록새록 난다고 했다. 더 많은 공연을 볼 걸 그랬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미처 생각도 못했다. 플러싱에 사니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카네기 홀 근처 지하철역에 내려 공연 포스터 보고 근처에 있는 아트 스튜던츠 리그 2층 갤러리에 가서 전시회 보고, 가끔은 57가 갤러리에 방문해 혼자서 조용히 전시회를 관람하곤 했다.
센트럴파크와 링컨 센터와 모마와도 가까운 카네기 홀에 얼마나 많은 추억이 있는가.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와서 카네기 홀과 인연이 된 것도 오랜 오랜 세월이 흐른 후였다. 두 자녀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 때까지는 학군 좋은 롱아일랜드에 살았고 맨해튼까지 가깝지 않았다. 공부하던 무렵이라 공연 볼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대학원 시절 만난 아일랜드 출신 영어 강사가 매주 맨해튼에 공연을 보러 간다고 하면 꿈같은 일이었다. 이탈리아계 남자와 결혼했던 강사는 아이도 없으니 얼마나 자유로웠을까. 브루클린 BAM( Brooklyn Academy of Music)에 폴 사이먼 공연 보러 간다고 하니 얼마나 부러웠던가. 대학시절 사랑하던 폴 사이먼과 가펑클이 뉴욕과 인연 깊은 줄도 뉴욕에 오고 나서 알게 되었다.
아들이 맨해튼 음악 예비학교에서 공부할 때 바이올린 지도교수님 Albert Markov (알버트 마르코프)께서 아드님 Alexander Markov (알렉산더 마르코프) 바이올리니스트 아파트로 레슨 받으러 오라고 하는데 롱아일랜드에 살 무렵이라 맨해튼 지리도 모르고 어떻게 찾아가야 하나 고민하며 맨해튼 지도를 보았다. 롱아일랜드에서 기차를 타고 맨해튼 펜스테이션 역에 도착 다시 지하철을 타고 카네기 홀 근처에 내리면 되는데 그때 우린 카네기 홀이 있다는 것도 모를 때.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산더 마르코프는 러시아계 미국인으로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금메달)과 애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 수상했다. 파가니니 음악에 무척 조예 깊은 음악가의 아파트에 어렵게 찾아갔다. 바로 카네기 홀 옆에 위치했고 수위에게 레슨 받으러 왔다고 말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들과 내가 맨해튼에 있는 아파트에 처음으로 방문했던 날.
카네기 홀에서 알렉산더 마르코브 바이올린 공연이 열렸는데 그 당시는 롱아일랜드에 살고 공부하던 무렵이라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본다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아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보게 되었던가. 어렵고 어렵더라도 그때 공연을 봤어야 하는데 후회도 밀려온다. 시간과 돈이 문제야. 무슨 일을 하든 늘 두 가지를 염두에 둔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사랑하니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받으면 맨 먼저 음반 가게에 가서 음반과 책을 사며 행복했다. 안네 소피 무터, 길 샤함, 이작 펄만, 요요마,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마우리치오 폴리니 등 수많은 음악가들의 음악을 자주 듣곤 했다. 먼 훗날 뉴욕에 와서 대학 시절 음반으로 만난 음악가들을 카네기 홀 무대에서 보니 꿈같았다.
두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 후 뉴욕시 플러싱으로 이사 온 후 맨해튼과 가까워졌고 문화생활이 가능해졌다. 카네기 홀 웹사이트에 접속해 가장 저렴한 티켓이 있나 확인하고 카네기 홀 박스 오피스에 방문해서 티켓을 구입하며 얼마나 가슴 설레었던가. 마에스트로 카라얀의 눈에 들어 베를린 필과 협연했던 안네 소피 무터 바이올리니스트 공연을 볼 거라 미처 상상도 못 했다.
수년 전 그녀 공연이 열릴 때 뉴욕에 폭설이 내렸는데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파크에 가서 예쁜 설경을 담느라고 온몸이 꽁꽁 얼어가고 핸드폰조차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춥고 결국 포기하고 공원을 나와 카네기 홀 옆 스타벅스 매장에 가서 언 몸을 녹였는데 지금은 사라졌다. 차츰차츰 맨해튼 매장이 문을 닫고 있는데 코로나 19 전염병까지 도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날 안네 소피 무터 공연은 멋졌다. 하필 공연 티켓을 분실해 직원과 소동을 벌이다 겨우 티켓 받아 하늘 같은 발코니석에 올라가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을 들으며 황홀했다.
이민 가방 들고 뉴욕에 온 지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카네기 홀과 인연이 되었지만 그 후로 나의 아지트로 변했다. 만약 뉴욕을 떠나게 된다면 눈에 아른거리는 사랑스러운 홀이 될 것이다. 항상 저렴한 티켓을 구입하니 하늘 같은 발코니 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니 시야가 불편하지만 내 형편에 맞는 선택이라서 감사함으로 보곤 했다. 가끔 아주 저렴한 티켓이라도 운 좋게 좋은 좌석에 앉아서 공연을 보는 행운도 있었다. 좋은 좌석이 좋긴 하다. 무대와 가까우면 음악가들 표정도 자세히 보게 된다. 아들과 이러쿵저러쿵하면서 공연을 보곤 했다.
한국 출신 정경화와 조성진과 장영주 공연도 봤다. 뉴욕에 살고 있으니까 어렵지 않게 공연을 보니 감사하다. 정경화 공연은 아들 친구는 무료 티켓(줄리아드 학교 은사님에게 받은 티켓)을 받아 좋은 좌석인데 아들과 내 곁으로 와서 잠시 공연 보고 다시 오케스트라 좌석으로 돌아갔다. 그날 딸 대학 졸업식에 참가하려고 뉴욕에 온 엄마는 우리에게 정경화 공연이 어떠냐고 물었다. 우리 이야기를 들으니 음악 초보자는 아닌 것 같아서 묻는다고. 솔직히 그녀는 잘 모른다고 하면서 물었다. 정경화 카네기 홀 고별 특별 기념 연주회였다. 연주가 끝나고 붉은색 정장을 입은 카네기 홀 직원이 정경화에게 꽃다발을 드렸다.
수년 전 아르헨티나 여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이작 펄만 공연이 예정되어 기대를 했는데 아르헤리치 피아니스트가 취소를 하는 바람에 볼 수 없고 대신 이작 펄만이 핀커스 주커만과 공연을 했다. 폴리니 공연을 보던 날 록펠러 센터 크리스티 매장에 전시회 보러 갔는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볼 수 없다고 하니 당황했다. 예약하고 다시 오라고 하는데 그날 오후 2시 폴리니 공연을 봐야 하는데 내게는 불가능하니 속이 상했다. 폴리니의 연주로 쇼팽곡을 들으며 얼마나 행복했던가.
메트 오페라 성악가들도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하곤 했다. 폴란드 출신의 피오트르 베찰라 공연은 얼마나 좋던지! 입에서 장미꽃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 살아있는 전설적인 테너 공연이었다. 우연히 러시아 출신 할머니를 만나 그 테너 공연을 꼭 보라고 해서 봤는데 잊히지 않은 훌륭한 공연이었다. 카네기 홀에서 자주 공연을 보는 음악팬들은 메트 오페라도 무척 사랑한다. 늦게 오페라의 세계에 입문하니 내게는 아직도 어려운 오페라. 오페라 성악가 이름은 기억하기도 어렵기만 하다. 그런데 음악팬들은 자세히 기억하니 놀랍다.
가끔 무료 공연도 열렸다. 무료공연이나 연주는 최고 수준이라 더 특별하다. 자주 카네기 홀에서 무료 공연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자주자주 카네기 홀 웹사이트에 접속해 무료 공연이 열리는지 확인하곤 했다. 폴란드에서 온 피아니스트 공연도 훌륭했는데 이름은 잊어버렸다.
2018년 가을 카네기 홀에서 봤던 알렉산드라 리 공연 너무나 감동적이라 잊을 수없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황홀한 연주였다.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어려운 환경에 꿈을 키웠던 바이올리니스의 미래는 장밋빛으로 물들길 바라는 마음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도 그립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곳인가. 내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카네기 홀. 오페라 지휘자도 만나고 음대에서 작곡 강의를 하는 분도 만나고 모자 디자이너도 만나고 은퇴한 변호사도 만나고 도서관에서 일하는 분도 만나고 오페라를 무척 사랑하는 수잔 할머니도 만나고 중국인 시니어도 만나고.... 셀 수 없이 많다. 작년 가을부터 얼굴이 안 보이는 중국인 시니어 벤자민은 어디서 무얼 할까. 매네스 음대에서 피아노 전공하는 중국인 학생도 자주 만났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가 궁금하다. 그가 사는 퀸즈 동네가 코로나 19 감염자가 많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또 음악을 사랑하는 여행객들도 만났다. 매년 뉴욕에 여행 와서 공연을 관람하는 분들도 만났는데 올봄은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코로나 때문이 아닐지.
코로나 19가 언제 물러갈지 모르지만 카네기 홀에서 만난 중년 남자가 불경기 안 타는 직업이 전기 수리공과 배관공이라고 해서 웃었던 추억도 떠오른다. 아주 오래전 페인트 칠을 했는데 뉴욕에 불경기 오니 사람들이 더 이상 페인트칠을 하지 않으니 먹고살기 힘든 직업이라고 말했던 분은 지금 무얼 하고 지낼까.
한국과 뉴욕이 다른 점 가운데 하나가 문화 예술 공연.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공연을 관람하러 가기 무척 어려웠다. 뉴욕에 비해 명성 높은 대가들의 공연도 자주 열리지 않고 티켓값도 너무 비싸 눈을 감았지. 여동생이 준 정경화 티켓을 받고 공연장에 달려가 본 것이 결혼 후 처음이었다. 귀하고 귀한 공연이 뉴욕에 오니 일상이 되고 명성 높은 카네기 홀이 나의 아지트로 변했는데 요즘은 아지트에 갈 수도 없으니 슬프다.
지난 3월 초 카네기 홀에서 요요마, 카바코스, 엠마누엘 엑스 공연을 본 것이 마지막 공연이었다. 3번이나 공연을 하니 플러싱에 사니 밤늦게 끝나 지하철 타고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하니 3번 공연 전부 볼지 안 볼지 고민하다 다 봤는데 나의 선택이 옳았다. 아들과 함께 맨해튼 음대에서 그리스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카바코스 마스터 클래스를 보고 반해 버려 카네기 홀에서 그의 공연을 보곤 했다. 현존 최고 바이올리니스트 카바코스는 어떻게 지낼까. 안네 소피 무터가 코로나 19 감염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건강은 어떤지 궁금하구나. 6월에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이 예정되었는데 과연 그때까지 정상으로 돌아갈지 아직도 미지수.
그리운 카네기 홀!
사랑스러운 나의 아지트!
언제 가 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