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가우디 투어 따라잡다 코피 줄줄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유로자전거나라에 ‘가우디 워킹투어’를 신청했다. 굳이 유럽까지 가서 한국 여행사 투어가 필요할까 싶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나를 충분히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의 얕은 지식을 가이드의 설명으로라도 채워 넣으면, 감동이 배가 되지 않을까 욕심도 났다.
‘가우디 워킹투어’는 까사 바트요,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구엘 저택, 레알 광장을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둘러보는 코스다. 스무 명의 투어 참가자들은 이어폰을 꽂고, 선두에 선 가이드를 쫓아 낯선 도시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노란 햇병아리들이 삐악 거리며 어미닭 뒤를 종종거리며 쫓아다니듯, 가이드를 따라 우르르 몰려가 함께 지하철을 타고 내리고, 우르르 몰려가 구경도 했다.
하지만 7월 중순 30도를 훨씬 웃도는 살인적인 날씨에 에어컨 달린 프리미엄 버스투어도 아니고, 지하철과 시내버스, 우리의 튼튼한 두 다리만 믿고, 여기저기 흩어진 가우디 건축물을 보러 다니는 일정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뜨거운 햇볕은 무방비 상태인 우리를 총체적 난국으로 몰고 갔다.
딸내미와 나는 무던히도 굼떠서 투어 뒤꽁무니를 겨우 따라붙었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젊은 가이드는 길 잃은 병아리라도 생기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며, 마이크에 대고 우리를 연신 불러댔다. 가우디 건축물이 얼마나 놀라운지 이 투어에서는 몰랐다. 점을 찍고 이동하는 여행이 이런 거구나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투어 뒤를 따라가는 딸내미 뒷모습그늘에 들어가면 금방 열기가 식기는 했지만, 쨍쨍한 햇볕에 나가면 어느새 뜨거운 혓바닥이 우리의 목덜미와 팔, 다리를 따갑게 훑고 지나갔다. 이렇게 더운 날, 딸내미는 하필 무릎까지 내려오는 두꺼운 칠부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불쌍한 딸내미 허벅지는 그 더운 날씨에 꼭 달라붙은 질긴 청바지에 싸여, 숨도 못 쉬고 질식할 듯 그 속에서 헐떡거렸다.
“엄마! 어디 가위 없을까?”
“뭐하게?”
“바지 자르게.”
“......”
가위를 사서 바지를 자르든 핫팬츠를 사서 입든, 숨도 못 쉬는 딸내미 허벅지를 살리고 봐야 하는데...... 가우디 건축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옷가게만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녔다. 하지만 ‘저기~맨 끝에 오시는 어머님과 따님~’ 하고 연신 불러대며 재촉하는 가이드 눈치 보느라, 바지 찢을 가위도 시원한 핫팬츠도 결국 사지 못했다.
목 축일 시원한 얼음물도 챙겨 오지 못했다. 석회 성분 때문에 수돗물을 먹지 못하는 유럽에서, 태생을 알 수 없는 물을 돈을 주고 계속 사 마셨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말했다. 이렇게 갈증으로 목이 타는 걸 보니, 푸른 지중해가 코앞에 있어도 바르셀로나는 사막이다. 그렇다면 어린왕자가 말한 사막의 오아시스는 어디 있는 걸까?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돌아서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다시 맺혔다. 딸내미 허벅지도 내 목구멍도, 오랜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쩍쩍 금이 갔다.
강한 햇빛에 오래 노출되면 눈도 화상을 입는다는데, 거금 투자한 선글라스도 제 역할을 못했다. 딸내미는 생애 첫 선글라스를 쑥스러워 꺼내지도 못하고, 모자도 없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맨얼굴을 드러내고 다녔다. 도수 높은 내 선글라스는 콧대 낮은 코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웠고,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서 계속 미끄럼을 탔다.
투어 뒤를 겨우 따라가며엎친 데 덮친다고, 들고 다니던 삼성 카메라는 저장 공간 없다고 사진 찍을 때마다 삑삑거렸다. ‘난 못 찍어. 더는 못 찍어. 저장 공간도 없으면서 사진을 찍으라고 난리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가이드가 뭐라 뭐라 가우디의 멋진 건축물을 남아있는 기운을 다 짜내어 설명했지만, 내 귀에는 웅성웅성 소음으로만 들렸다. 바르셀로나까지 와서 가우디 사진도 못 찍다니...... 이 사태를 해결할 궁리만 했다. 카메라로 못 찍으면 그럼 핸드폰으로라도 찍자.
“딸냄! 카메라 저장 공간 없대. 네 핸드폰으로 찍어.”
“나 핸드폰 안 들고 나왔는데.”
“뭐라고?”
곱지 않는 빽 소리가 내 입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몸의 일부처럼 손에 들고 다니다, 엉덩이만 붙이면 들여다보던 핸드폰이다. 그런데 정작 필요할 때는 없다 하니 짜증이 확 올라온다.
투어를 놓치지 않고 따라다니며, 그동안 찍은 런던 사진을 체크해서 버리고, 그만큼 생긴 공간에 사진을 몇 장 더 찍어 저장했다. 그 짓을 투어 끝날 때까지 했다.
목구멍은 타들어가고, 정수리는 뜨거운 햇볕에 달궈지고, 카메라 저장 공간을 마련한다고 고개 처박고 삭제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으려니, 내가 여행 와서 뭔 짓을 하고 있나 심란하기만 했다. 그날 투어를 함께 한 누군가는 가우디 워킹투어로 즐거운 추억을 쓸어 담았겠지만, 그날 나의 기억 속에는 가우디가 없다. 뜨거운 햇볕과 삑삑거리는 카메라와 딸내미의 숨 못 쉬는 청바지만 있었다.
구엘 공원에서 바르셀로나 햇볕은 절정에 달했다. 색색의 타일로 만들어진 곡선의 벤치는 허벅지를 데일만큼 뜨거웠고, 스머프 마을이 연상되는 건축물들은 햇빛에 눈이 부셔 지붕을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다행히 가이드가 공원도 둘러보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선물가게에서 기념품도 구입하라고 30분 자유 시간을 주었다. 우리는 더위 먹은 강아지처럼 헥헥대며 그늘을 찾아 들어갔다.
“엄마!”
겨우 엉덩이를 붙이고 땀을 식히고 있는데, 딸내미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딸내미 코에서 시뻘건 코피가 줄줄 코에서 입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휴지를 돌돌 뭉쳐 콧구멍을 틀어막고 콧등을 손가락으로 잡았지만, 코피는 쉽게 멎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 흙바닥에 딸내미는 그렇게 DNA 흔적을 진하게 남겼다.
가끔 딸내미가 코피를 흘리기는 했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딸내미의 빨간 코피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뭔 짓을 하고 있는가? 그렇게 여행 욕심내지 말자고 느긋하게 우리만의 여행을 즐기자고 다짐했는데.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투어 쫓아다니다 코피까지 쏟게 하고. 더위로 뺨은 벌겋고 콧구멍에는 휴지를 틀어막고 땅바닥에 앉아있는 딸내미를 보니 너무 안쓰럽다.
찍을 공간 없으면 사진 안 찍으면 되고, 무거우면 선글라스 안 쓰면 되고, 大자 이어폰 귓구멍 찢으면 안 끼면 되고, 청바지 더우면 안 입으면 되고, 이건 아니다 싶으면 투어 중간에 둘이 손잡고 뛰쳐나오면 되는데......‘아님 말고’하면 되는데. 안 하고 버리고 빼면 되는데, 하려고만 가지려고만 하나라도 더 채우려고만 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 사람에게는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기쁨은 결코 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 -존 러스킨
딸내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주관하는 영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했다. 혼자 책 읽기 좋아하는 내성적인 딸내미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기회라고 침 튀겨가며 남편의 동의를 얻고, 딸내미를 부추겨 대회에 내보냈다. 딸내미는 원고도 혼자 쓰고 밤늦도록 연습을 했다.
그런데 예선 심사를 받는 날, 담임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애가 많이 아픈데요. 열도 나고. 아무래도 대회에 나가는 건 무리인 것 같아요.”
“네...... 조퇴시켜 보내주세요.”
엄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예선을 통과해야 한다는 딸내미의 부담감과 불안을 그때는 들여다보지 못했다. 딸내미가 아프다는 소식에 얼마나 아픈지 걱정하는 엄마가 아니었다. ‘하필 이런 때 아프냐. 예선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그동안 준비한 게 아깝다.’라는 원망만 들고 속만 상한 철없고 욕심 많은 엄마였다.
그런데 조퇴하고 집에 일찍 와야 할 딸내미가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오후 늦게 집에 돌아온 딸내미는 가방도 내려놓기도 전에 밝은 목소리로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 나 예선 통과했어.”
예선 참가도 못하고 집에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의 소식이었다.
“어구. 우리 딸내미 잘했다. 잘했어.”
칭찬을 쏟아부어주었다. 딸내미 얼굴은 여전히 열로 벌겋게 들뜨고, 이마는 뜨거웠는데.
딸내미 10개월 때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존해야 하는 어린 자식은 생존본능 때문에 부모의 뜻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고, 사랑을 받으려고 항상 불안과 두려움에 떤다고 한다. 살갑게 대해 주지도 못하고,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주지도 못한 엄마였는데...... 그런 엄마의 기대를 자기 열나고 아프다고 저버리기가 쉽지 않아, 아픈데도 단상에 올라 기를 쓰고 밤새 외운 영어를 내뱉었을 딸내미를 생각하니 안쓰러움만 든다. 지난 추억을 뒤질수록 미안한 기억만 파헤쳐진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힘들다 말도 못 하고, 코피를 쏟아가며 엄마 뒤를 부지런히 쫓아다녔을 딸내미.
일일 투어 뒤에 무료로 진행되는 야경투어를 취소하고 숙소에 들어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누우니 딸내미는 금방 쌔근쌔근 잠이 든다. 그렇게 몇 시간을 누워 쉬었다. 그냥 쉬었다. 그래야 가우디도 가우디가 될 수 있고, 바르셀로나도 바르셀로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밤 꿈을 꿨다. 더위로 까맣게 생긴 기미가, 미역처럼 온 얼굴을 뒤덮는 무시무시한 꿈이었다. 다음 날부터 바르셀로나 떠나기 전까지 얼굴에 선크림을 무지막지하게 바르고 다녔다. 끈적거려 싫다는 딸내미 얼굴도 끌어다가, 흰색 유화물감 덧칠하듯 바르고 또 발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