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생각

by 지금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날이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스승의 날은 쑥스러운 날입니다.


며칠 전부터 고민이 되었습니다. 스승의 날을 '그냥 지나쳐야 할까?, 말까?' 저만 생각하자면 스승의 날은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스승이라고 한 번도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치기가 아쉽습니다. 아이들 생각하는 마음이 크고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고민을 하다 결국 감사편지는 써야겠다 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어시간에 그동안 가르쳐주신 담임선생님과 전담 선생님들께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칼라프린터로 편지지를 프린트해서 한 장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주 비싼 편지지는 아니지만 이렇게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감사함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한 교육이 되는 것이니까요.


매일 뛰어다니기만 하던 현민이는 종이를 5장이나 받아갑니다. 영양사 선생님부터 체육전담선생님, 작년 체육전담선생님, 우쿨렐레 강사 선생님, 그리고 담임인 저까지 편지를 전해줍니다.


스승의 날 편지 쓰기는 항상 저를 제외한 선생님들께 편지 쓰기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편지 받는 것이 너무 부끄럽거든요. 오늘도 5명의 친구들이 제 책상 위에 편지를 올려놓고 가네요.


스승의 날인 오늘은 은사님 찾아 뵐 분들은 조퇴해도 된다고 하시는데 일부러 조퇴를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작년 6학년을 담임했던지라 내심 몇 명의 친구들이 오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몇 명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가 우르르 몰려 사라집니다.


3시가 넘어 혼자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인호입니다. 인호와 교실에 단둘이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입니다. 저도 살짝 어색함이 있었지만 조금 지나니 괜찮아지더라고요. 인호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가만히 듣기만 하는 친구입니다. 학년초 교실에서 인호의 말소리를 듣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지요. 과묵한 인호가 작년 5월이 넘어서 조금 목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했던 거로 기억이 납니다. 그런 인호가 혼자 교실에 나타난 겁니다.


"인호야, 어서 와!. 그런데 혼자 왔어?"

"네 선생님 저 혼자 왔어요. 스승의 날이라 선생님 봬야 될 것 같아서 왔어요"

"잘 왔어"

"인호야 선생님이 마실 것 좀 줄까?"


인호는 가방을 열어 뭔가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세상에나 가방 안에서 제가 좋아하는 시원한 캔커피가 나오더라고요. 초콜릿도 나오고 삼각김밥도 나오는 것 있지요.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사 왔나 봅니다.


"인호야 선생님 주려고 사 온 거야?"

"네 선생님 드리려고 제 용돈으로 사 왔어요"


정말 놀랐습니다. 조용하고 웃기만 했던 녀석이 이렇게 중학생이 되어서 선생님 준다고 시원한 캔커피도 사 오고 삼각김밥도 사 오고 말입니다.

키도 한 뼘이나 큰 것 같아 물어보았습니다. 키가 졸업하며 5센티나 컸다고 합니다. 얼굴도 어린이가 아니고 청소년 분위기가 납니다. 한 달 용돈이 5만 원인데 이렇게 사 왔다고 합니다. 1년 전과 너무 다르게 의젓해지고 이야기도 잘하는 인호가 신기하고 대견스럽더라고요.


사실 인호는 너무 얌전한 아이라 졸업하고 학교를 찾아올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활달한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거든요. 오늘은 인호가 스승의 날 이벤트를 열어주어 평생 잊지 못할 스승의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인호가 혼자 방문해 주니 작년 담임했을 때보다 인호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친구들 이야기, 친구와 학원 다니는 이야기, 가고 싶은 고등학교 이야기, 아직 정해지지 않은 꿈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인호에게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잔소리가 되지 않았기를 빌어봅니다.


스승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뿐 아니라 잘 이끌어 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스승의 날 저의 스승님들도 떠올려 보고, 저의 제자들도 생각해 보며 진정한 스승의 날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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