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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ol Oct 12. 2024

2. 나라의 첫인상은 사람을 통해 기억된다

브루나이 여행, 혼자인듯 함께


"이슬람 국가를 혼자 여행 가는게 무섭지 않겠어?"


이번 여정은 나홀로 떠나보는 첫 여행이었다. 주변에선 이슬람 국가를 여자 홀로 떠나는게 걱정스러운듯 물었다. 나는 무섭기보단 설렘이 더 컸다. 브루나이는 국가에서 지정한 여행 안전 국가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곳에는 나를 기다리는 친구가 있다.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인도한 두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는 사실만으로 그 어느때보다 흥분되고 기대되고 여행이었다.



내 브루나이 친구 '페이팅'

'반갑다 친구야'를 할 또다른 나의 브루나이 친구 페이팅. 중국계 이민 3세대로 히잡을 쓰지 않는 바로 그 친구다. 페이팅을 표현하자면 이렇다.

'조용하지만 묵직하고 강한 친구'
'늘 주변 친구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맘이 따뜻한 친구'
'학교 졸업후, 열심히 일해 모은 돈으로 세계를 여행하며 삶을 즐기는 친구'



1석 2조 나의 여행 루트

인천공항 (6시간 이동) →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국제공항 (5시간 공항 대기) → 브루나이 (2시간 반 이동)


첫 목적지인 브루나이까지 나의 여행 루트다. 여행지를 정하면 비행기표 살 때 스탑오버 가능한 나라부터 확인한다. 브루나이 친구들이 자주 왕래한다는 말레이시아를 선택했다. 브루나이 여행을 마치곤 하루 반나절 12시간 동안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에 머무를 수 있는 티켓이었다. 한국에서 브루나이까지 직항으로 5시간이면 가는 거리지만 나는 말레이시아가 너무 궁금했다.


6시간 넘게 비행하고 도착한 콸라룸푸르 국제공항. 5시간 대기시간 동안 여유롭게 공항 내부를 돌아보며 간단히 식사도 하고, 상점도 둘러보고, 커피도 마시며 다음 말레이시아 여행을 혼자 시뮬레이션 했다. 여행을 즐기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렇게 여행세포를 깨웠다.



자 이제 브루나이로 출발!

도착 후 가장 먼저 할 일은 마중 나온 페이팅을 만나는 것이다. 짐을 챙겨 나오니 3년 전 그 때와 똑같은 페이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니 비로소 '나 잘 도착했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페이팅을 만나고 검색으로 미리 체크해둔 공항 유심센터에 들렸다. 휴대폰 체크까지 완료. 진짜 브루나이 여행 시작이다.


페이팅과 공항 밖으로 걸어 나오니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하루 전까지 추운나라에 살던 내가 더운 나라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 들었다. 공항은 내가 사는 곳과 확연히 다른 그 지역만의 온도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밖을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상반된 온도차.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그 순간을 나는 좋아한다. 이게 내가 겨울이면 여름나라를 찾아 떠나는 이유기도 하다.






나라의 첫인상은 사람을 통해 만들어진다

 

페이팅이 손짓하는 곳에는 페이팅 언니가 차를 대기하고 있었다. 친구 덕분에 공항에서 숙소까지 차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음에 참 감사했다. 공항을 벗어나니 열대나무와 건축물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5분만에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했다. 브루나이 수도인 반다르스리브가완의 중심지인 가동(Gadong)에 위치한 이곳은 1인 여행자들이 몇일 묵기에 부담없는 가격에 깔끔한 주방과 샤워실을 갖춘 실속형 게스트하우스였다. 숙소 호스트와 미리 연락해서 받아둔 비번을 누르고 들어가니 숙소의 알록달록한 문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3일 동안 지냈던 나의 공간


페이팅은 방에 들어와 혹시 내가 필요한 것은 없는지 위험하진 않는지 여기저기 꼼꼼히 체크했다. 침대 맞은편 큰창문이 짧은 커텐으로 가려지지 않는 걸 확인하고는 집에서 커텐을 고정할 수 있는 큰집게를 챙겨왔다. 이렇게나 세심한 친구다. 멀리서 오느라 배고팠을 나에게 간식거리를 챙겨주며 쉬고 있으면 저녁 먹으러 데리러 온다고 했다. 피곤했을 나를 배려해 페이팅과 페이팅 언니가 잠시 집으로 돌아간 사이, 나는 짐을 풀고 노곤해진 몸을 침대에 기댔다. 휴우..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정말 브루나이에 왔네'






한달 전만 해도 여행계획이 전혀 없던 내가 브루나이에 있다니 아직도 꿈만 같았다. 이곳에서 맘 편히 몸을 누일 수 있는 건 모두 친구의 덕이다. 그래서일까 브루나이의 첫인상은 늘 따뜻함으로 기억된다. 낯선 여행지에서 오고가며 만난 사람들이 보여주는 따스함은 가장 오랫동안 가슴 한켠에 살아남아 기억된다. 여행의 진짜맛이다. 한 사람의 친절이 그 나라에 대한 애정과 팬심을 만들고 다시 찾고 싶은 나라가 되는 것이다.





암부얏, 너로 정했어!


페이팅은 어떤 음식을 가장 먹어보고 싶은지 물었다.


"암부얏!"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보는 것에 주저함이 없던 나는 가장 브루나이스러운 전통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브루나이 여행 정보를 검색하던 중 TV프로그램에서 발견한 음식이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비주얼로 굉장히 도전적일 것 같은 음식이었다. 그래 너로 정했다!


다시 돌아온 페이팅은 암부얏을 먹을 수 있는 브루나이 전통식당으로 나를 데려갔다. 브루나이에 20년 넘게 살았지만 자신은 거의 먹지 않는 음식이라고 했다. 암부얏은 사고야자나무 줄기에서 추출한 녹말을 반죽한 브루나이 전통음식이다.



이 음식을 잘 먹기 위해서는 나무 젓가락같은 긴 막대가 필요하다. 젓가락으로 한번 찍어 돌돌돌 말은 뒤 소스에 찍어 한입에 넣으면 된다. 왜 젓가락을 사용해 먹는지 단번에 이해됐다. 끈끈한 풀죽같은 암부얏은 무색 무취의 맛이난다. 제대로 맛보려면 소스와 다른 반찬들과 함께 먹어야 한다. 우리가 맨밥에 반찬을 함께 먹는 것과 비슷하다.


따뜻한 암부얏 한입 먹고 생선 한입 먹고

암부얏 또 한입 먹고 야채 반찬 한입 먹고


뜨끈한 밥에 반찬을 든든히 먹는 기분이 들었다. 속이 한결 편해졌다. 오랜 비행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것만 같았다. 돌돌말아 먹는게 쉽진 않았지만 나도 친구도 암부얏을 먹는 과정이 재밌었다. 새로운 시도도 함께 하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나의 도전을 거리낌 없이 함께 해준 페이팅과 친구들에게 고마웠다.





혼자인듯 함께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 친구들은 숙소주변이 안전한지 한번 더 체크해주고 돌아갔다. 나는 잠깐 봐둔 1분 거리의 슈퍼마켓에 나가 음료수와 주전부리 할 것들을 샀다. 홀로 남겨지니 주변의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리의 사람들이 보이고, 이곳만의 향기가 느껴졌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과 색을 눈에 담았다. 배도 든든하고 맘도 편하니 오감이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다. 이것은 타지에서 온 이방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일상인 순간들이 타지인에게는 새로운 감각이 된다.


3년 전 두친구와 맺은 소중한 인연 덕분에 나는 지금 이곳에 와 있다. 배도 든든하고, 편히 누울 수 있는 따뜻한 방이 있고, 함께 어울릴 친구도 있다.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뭉클하고 감사한 마음이 마구 샘솟는 하루였다. 그렇게 혼자인듯 함께인 브루나이 여행이 진짜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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