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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서울 5 산 완주가 남긴 마음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청계산을 내려와 발걸음을 멈춘 순간,
드라마처럼 벅찬 장면이 펼쳐지진 않았다.


누군가 꽃다발을 건네는 것도,
완주 인증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조용하게,
서울 5 산 도전이 끝났다는 사실만이
내 안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그런데 그 조용함 속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천천히 떠올랐다.


“아, 나도 해냈구나.”


누구와 경쟁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업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 도전은
내가 스스로 마음먹고
스스로 시작해서
스스로 끝낸 일이었다.


그 사실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한라산을 마쳤을 때와도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한라산이 ‘첫 도전의 성취’였다면,
서울 5 산은 ‘흐름을 이어낸 힘’이었다.


남산에서 가볍게 시작해
같은 날 인왕산까지 이어졌던 그 웃음,
관악산에서 한 걸음씩 눌러 올렸던 힘,
북한산 백운대에서 깊게 들이쉰 그 숨,
그리고 청계산의 길고 느린 리듬까지.


그 작은 조각들이
하나의 줄기처럼 연결되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다.


완주했다고 해서
삶이 갑자기 바뀐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마음먹은 건 끝까지 걸어낼 수 있다’
그 아주 작은 확신이 생겼다.


돌이켜보면,
어쩌면 그 확신 하나 얻으려고
이 도전을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모든 걸음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서울 5 산을 모두 마친 날은
2022년 11월 28일.


달력 속의 평범한 하루처럼 보이지만
내게는
그해의 끝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 날이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산을 찾기 시작했다.
목표라기보다는
몸이 먼저 “또 걸어보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 흐름이
2024년 설악산 도전으로 이어졌다.


서울의 다섯 산은
내게 거대한 성취를 주진 않았다.


하지만 대신
작고 꾸준한 힘을 남겨주었다.


그 작은 힘이
그 이후의 모든 도전들을
조용히, 그리고 든든하게 지탱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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