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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청계산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서울 5 산의 마지막 여정은 청계산이었다.
남산처럼 가볍지도,
관악산처럼 거칠지도,
북한산처럼 높은 정상도 없었다.


하지만 청계산은
그 어떤 산보다 길었다.
정상 하나만 찍고 내려오는 산이 아니라
계속 걷고, 또 걷는 산.
그래서 체력보다
지속하는 힘이 더 필요했다.


입구에 도착하는 순간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산을 넘으면 서울 도전이 끝나는구나.’
그 사실은 마음에 작은 안도감을 남겼다.


그러나 조금만 올라가자
금세 느껴졌다.
이 산이 다른 방식으로 힘을 쓴다는 걸.
경사는 크지 않은데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길.
부드럽게 이어지는 흙길이지만
멀리까지 이어져 있다는 생각에
걸음이 자연스레 차분해졌다.


걷고 또 걸으면서
내 마음도 평지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크게 벅차오르는 순간은 없었지만
그 느린 리듬이 오히려 좋았다.


나는 어쩌면
가파른 오르막보다
이런 꾸준한 산이 더 잘 맞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호흡이 안정되고
걸음이 일정해지자
머릿속도 하나둘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한참 걸은 끝에
매봉 근처에 닿았다.
청계산의 정상인 망경대까지는
안전상의 이유로 갈 수 없기에
오늘의 마지막은 매봉이었다.


정상 표시석을 만지는 순간,
벅참보다는 담담함이 먼저 찾아왔다.
“그래, 여기가 마지막이구나.”
그 조용한 문장이 마음에 깊게 내려앉았다.


풍경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눈앞의 산보다
내 안의 풍경이 더 또렷했다.


한라산에서 시작한 첫걸음이
서울의 다섯 산을 지나
여기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
‘내가 이렇게 걸어왔구나.’
그 단순한 확인이
오늘의 완주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하산길은 길지 않았지만
걸음은 유난히 가벼웠다.
몸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다섯 산 모두를 끝냈다는
작은 성취가 마음 깊은 곳에서 빛났기 때문이다.


서울 5 산 도전을 마무리하며
나는 깨달았다.


어떤 산은 높아서 힘들고
어떤 산은 길어서 힘들고
어떤 산은 마음 때문에 힘들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산을 걸어낼 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청계산은
그 사실을 조용히, 끝에서 알려준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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