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길에서도 다시 배우는 마음
서울 제로포인트의 시작은 언제나 같다.
여의나루역 2번 출구.
지도 없이도 몸이 먼저 향하는 자리.
이제는 출발 인식 소리만 들으면
어깨가 자연스레 풀리는 곳이다.
여의도에서 한강대교까지는
한강공원을 따라 걷는다.
예전에 장거리 대회에서 이 구간을 지나며
한강 즉석라면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따라 그 라면이 왜 그리도 맛있었는지.
그 기억 때문인지
이번에도 ‘에너지 보충’이라는 핑계를 대며
라면 한 그릇을 후루룩 비웠다.
다시 동작대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강을 벗어나면
길은 자연스럽게 낙성대 방향으로 향한다.
간식을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며
굳이 서두르지 않는 걸음.
그렇게 나만의 리듬이 만들어진다.
서울대 입구에 닿자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될 차례였다.
가장 짧은 코스를 선택했지만
막상 들어서 보니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어? 암릉이야?”
그 코스를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가
오늘 함께하고 있었다.
몇 년 전 100대 명산을 도전하던 시절
내가 올랐던 길과 달라
자꾸만 낯설게 느껴졌다.
“이 길이 맞아?”
“아닌 것 같은데…”
“암릉인데…?”
친구는 짧게 대답했다.
“맞아, 이 길이야. 그냥 와.”
그런데도 나는 계속
내가 기억하는 길과 비교하며
툭툭 의심을 내뱉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운암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 맞는구나. 이 길이.”
그제야 친구가 왜 더 설명하지 않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나는 계속 ‘내가 아는 길’을 기준으로 삼고 있었지만
산은 언제나 또 다른 길을 품고 있었다.
정상에 도착하니
잠시 웃음이 났다.
왜 그토록 의심했을까.
왜 굳이 예전의 기억에만 매달렸을까.
신기하게도
그 모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산은 결국 우리를
정상이라는 같은 자리로 데려다주었다.
이제 남은 건 하산길.
어느 길로 내려갈지
잠시 서서 숨을 고른다.
걷고 또 걷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는 늘 선택의 순간이 온다.
그 선택은 결국,
또 다른 길을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