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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인왕산-남산에서 이어진 두 번째 걸음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남산에서 내려오는 길,
몸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정상까지 올랐는데도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걸음에는 힘이 남아 있었고
마음도 아직 멈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보통은 남산을 끝내면
따뜻한 커피 한 잔 생각이 먼저 나기 마련인데
그날은 달랐다.
“이왕 서울에 왔는데… 인왕산도 가볼까?”
그 생각이 아주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억지로 계획한 것도, 의지를 다진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어서 걷고 싶었다.
아마 남산이 ‘부담 없이 시작된 첫 산’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왕산 입구는

남산과 확실히 달랐다.
산 전체에 단단한 느낌이 있었고
길은 훨씬 정직하게, 꾸준히 위로 이어졌다.
도심과 이렇게 가까운데도
유난히 고요한 기운이 있었고
그 고요함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다.


남산을 먼저 걸었기에
몸이 충분히 풀려 있었고
발걸음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하지만 경사만큼은 남산과 비교할 수 없었다.
짧고 굵게 올라가는 인왕산의 리듬에 맞춰
숨은 조금씩 빨라지고
걸음은 조금 더 천천히 바뀌었다.


걷다 보면
도시는 자연스럽게 발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양도성길의 오래된 돌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한 프레임 안에 담기는 순간.
그 풍경이 인왕산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었다.


정상 가까이 다가가자
바람이 조금 더 세졌다.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다.
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었던 그곳이
저 아래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
‘오늘 나는 두 개의 산을 걷고 있구나.’
그 생각이 스스로에게 작은 힘을 주었다.


정상에 섰을 때
남산에서 느꼈던 감정과는 또 달랐다.
남산이 ‘시작’이었다면
인왕산은 분명히 ‘연결’에 가까웠다.
이 도전이
그냥 한 번의 호기심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 산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
그 연결의 감정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같은 날 남산과 인왕산을 모두 올랐던 하루.
돌이켜보면
큰 계획도, 각오도 없었지만
그날의 선택이
서울 5 산 도전의 흐름을 잡아준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 이 도전, 계속하게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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