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서 내려오는 길,
몸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정상까지 올랐는데도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걸음에는 힘이 남아 있었고
마음도 아직 멈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보통은 남산을 끝내면
따뜻한 커피 한 잔 생각이 먼저 나기 마련인데
그날은 달랐다.
“이왕 서울에 왔는데… 인왕산도 가볼까?”
그 생각이 아주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억지로 계획한 것도, 의지를 다진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어서 걷고 싶었다.
아마 남산이 ‘부담 없이 시작된 첫 산’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왕산 입구는
남산과 확실히 달랐다.
산 전체에 단단한 느낌이 있었고
길은 훨씬 정직하게, 꾸준히 위로 이어졌다.
도심과 이렇게 가까운데도
유난히 고요한 기운이 있었고
그 고요함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다.
남산을 먼저 걸었기에
몸이 충분히 풀려 있었고
발걸음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하지만 경사만큼은 남산과 비교할 수 없었다.
짧고 굵게 올라가는 인왕산의 리듬에 맞춰
숨은 조금씩 빨라지고
걸음은 조금 더 천천히 바뀌었다.
걷다 보면
도시는 자연스럽게 발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양도성길의 오래된 돌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한 프레임 안에 담기는 순간.
그 풍경이 인왕산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었다.
정상 가까이 다가가자
바람이 조금 더 세졌다.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다.
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었던 그곳이
저 아래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
‘오늘 나는 두 개의 산을 걷고 있구나.’
그 생각이 스스로에게 작은 힘을 주었다.
정상에 섰을 때
남산에서 느꼈던 감정과는 또 달랐다.
남산이 ‘시작’이었다면
인왕산은 분명히 ‘연결’에 가까웠다.
이 도전이
그냥 한 번의 호기심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 산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
그 연결의 감정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같은 날 남산과 인왕산을 모두 올랐던 하루.
돌이켜보면
큰 계획도, 각오도 없었지만
그날의 선택이
서울 5 산 도전의 흐름을 잡아준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 이 도전, 계속하게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