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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남산— 도심에서 시작된 첫걸음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서울 제로포인트의 시작점이
여의나루역 2번 출구라는 사실이 조금 신기했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GPS를 맞추고 시작한다는 것이
낯설면서도 새로운 느낌이었다.


출구를 나서자
아침의 도시는 이미 분주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고
차들은 쉼 없이 지나갔다.
그 사이에서 등산복 차림으로 걷는 내 모습이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출발 인식을 마쳤으니
이제는 걸어가는 것뿐이었다.


남산은 서울에서 가장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높이도 부담스럽지 않고
누구나 산책하듯 오를 수 있는 길이 많다.
그래서인지 제로포인트 서울 5 산의 첫 산이
남산이라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자연스럽다.


처음부터 크게 마음을 다진 것은 아니었다.
그냥 몸을 가볍게 푸는 느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이었다.


보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남산타워가 멀리 보였다.
늘 멀리서만 보던 풍경이지만
오늘은 그곳이 ‘도착점’이라는 사실이
신기했다.


남산 초입까지는
도심의 골목과 포장도로가 이어졌고
등산로에 들어서야 비로소
발밑에서 흙의 감촉이 느껴졌다.
바람도 달라졌다.
도시의 소음은 조금씩 멀어지고
내 걸음 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렸다.


남산은 높지 않지만
도시의 길과 산의 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한라산처럼 큰 숨을 몰아쉴 필요도 없고
지리산처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할 필요도 없다.
편안하게, 꾸준히 올라가면 되는 산.
그 편안함이
이 도전의 첫 단추를 끼우기에 참 좋았다.


어느 순간
내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웠고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풍경은
도시와 산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남산이 주는 고요함은
생각보다 깊었다.


정상 부근에 도착했을 때
아름다운 가을날,맘껏 누렸다.


“아… 나 이거 계속할 수 있겠다.”


힘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걸음이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산에서 내려오는 길,
다음 산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인왕산은 어떤 느낌일까?’

서울 제로포인트 5 산의 첫 단추는
그렇게 조용하게,
자연스럽게 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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