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도전을 끝내고 나니
이상하게 또 다른 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서울의 다섯 산까지 해볼 생각은 없었다.
그럴 이유도, 특별한 목표도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서울에도 제로포인트트레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 조용히 한 생각이 스쳤다.
“이것도 한번 해볼까?”
한라산을 마쳤을 때 마음속에 남았던
그 작고 묵직한 여운이
자연스럽게 나를 다음 길로 이끈 것 같았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늘 잠깐 스쳐 지나가는 곳이었다.
회의나 약속, 여행의 경유지.
‘산행의 출발점’이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제로포인트 서울 코스의 출발점이
지하철역이라는 사실은
처음엔 조금 낯설었다.
남산 제로포인트의 시작 역시
여의나루역 2번 출구였다.
개찰구를 지나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나왔을 때
“정말 여기서부터 산행이 시작된다고?”
문득 웃음이 났다.
등산복 차림으로
지하철역 출구에 서 있는 모습이
조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새로웠다.
서울 제로포인트의 특징은
도시 한가운데서 바로 걸음을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별다른 이동 없이
지하철역에서 바로 걷기 시작하면
그 길이 자연스럽게 산으로 이어졌다.
이 방식이 생각보다 편했고
도시에서 산으로 넘어가는 흐름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2번 출구 위에 서서
GPS 출발 인식을 맞추는 순간
한라산에서 느꼈던 기분이
조용히 되살아났다.
“자, 이제 시작이네.”
주변은 여전히 분주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 속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내 걸음은 그 순간부터
남산을 향하고 있었다.
남산으로 향하는 동안
특별한 각오를 되새기진 않았다.
그저
“한라산도 했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 마음 하나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도시는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남산의 능선이 눈앞에 가까워졌다.
서울의 풍경 한복판에서
산을 향해 걷고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마음을 움직였다.
서울에서의 산행은
한라산과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에서 시작해
사람들의 일상과 섞이다가
어느 순간 산길로 이어지는 흐름.
그 낯선 연결이
이 도전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