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음사로 내려가는 길에서 비로소 알게 된
정상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백록담 가장자리에 선 순간
바람은 더 강했고
멀리 쌓인 구름은 빠르게 움직였다.
사람도 많았고
무엇보다
지금부터는 ‘하산’이 더 중요했다.
올라갈 때는 진달래밭 대피소 통제 시간에 맞추어야 했지만,
정상에 오른 뒤에는
내려가는 길의 안전만 잘 지키면 됐다.
그래서 나는 오래 머물기보다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하산길은
오르막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내려가는 길은 더 가팔랐고
돌계단 사이사이 남은 얼음은
발목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무릎은 금방 피로해졌고
발바닥은 뜨거운 돌 위에 놓인 듯 아파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오를 때 쌓였던 생각들은
정상에 닿는 순간 이미 사라진 듯했고,
내려가는 동안에는
그저 ‘잘 내려가야지’ 하는 단순한 마음만 남았다.
관음사 방향 하산길은
성판악보다 경사가 훨씬 가파르고 길도 험했다.
넓게 펼쳐진 바위에서는
양손까지 써야 했고,
잠시만 방심해도 발이 미끄러질 만큼 길은 예민했다.
하지만
그 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면서
나는 오히려 마음이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오르막에서는
‘할 수 있을까’가 앞서지만,
내리막에서는
‘아, 나는 결국 해냈구나’
그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멀리 관음사 지붕이 보이기 시작할 때
나는 이미 지쳐 있었고
몸은 빨리 쉬고 싶다고 외쳤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뿌듯함이 천천히 올라왔다.
처음에는
그저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길이었다.
하지만 관음사로 내려오는 마지막 돌길에서
나는 그 마음이
그동안 꽤 멀리 자라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두렵고 흔들렸던 순간도 있었지만
멈추지 않고 걸었고,
끝까지 내 속도로 올라갔고,
그렇게 내려왔다.
한라산 제로포인트의 첫 완주는
그렇게
조용하고 단단하게
내 안에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