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밭 대피소를 지나면
길은 본격적으로 산의 리듬으로 들어선다.
사라오름 입구까지 1.7km,
그 이후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1.5km.
총 3시간가량 이어지는 긴 오르막.
돌길과 데크길이 번갈아 나타나고
높아지는 경사에 맞춰 숨이 점점 깊어진다.
지금까지 가벼웠던 걸음은
이제 조금씩 무거워지고
어깨에 멘 배낭의 무게도 선명하게 느껴진다.
진달래밭 대피소는
정상에 오르기 위한 관문 같은 곳이다.
여기서 12시 30분 이전에 통과하지 못하면
백록담에 갈 수 없다.
누구는 그 시간을 맞추려고 속도를 올리고,
누구는 자신의 호흡을 지키기 위해 천천히 걸음의 리듬을 조절한다.
그 사이에서 나도
내 걸음 그대로,
급하지 않게,
그러나 멈추지도 않으며 계속 올라갔다.
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먼저 지칠 때가 있다.
“왜 여기까지 와서 고생을 하나.”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나를 생각하면
다시 한 걸음이 나온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지금 이 순간의 나를 후회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진달래밭 대피소가 보였을 때
안도와 기쁨이 함께 밀려왔다.
그리고 나는 문득 깨달았다.
정상까지 남은 길보다
여기까지 온 길이
오히려 더 큰 의미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