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서 내려와 서울에 도착한 밤,
몸은 분명 피곤했지만
생각만큼 무겁지는 않았다.
긴 하루를 보냈다는 실감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벅차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치의 일을 잘 마쳤다’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아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누웠을 때
그제야 온몸에 힘이 빠졌다.
새벽부터 시작했던 걸음을 떠올리면
힘들 법도 한데
의외로 마음은 차분했다.
설악산을 완주했다는 성취감보다
“그래도 잘 다녀왔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다음 날 새벽,
첫 기차를 타기 위해 잠에서 일어났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고
전날과 비슷한 새벽 공기였지만
기분은 달랐다.
오늘은 산으로 가는 하루가 아니라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보면서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설악산 풍경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보다
집으로 가는 길이 익숙해서 그런지
마음이 빨리 편안해졌다.
도전을 마쳤다고 해서
삶이 갑자기 달라지는 건 아니다.
설악을 갔다고 해서
더 강해지거나
뭔가 크게 깨닫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는 감각이
몸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 잡은 것 같았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집에 도착하고 짐을 풀면서
이번 도전을 어떻게 기록할지
어떤 마음으로 남겨둘지
잠시 생각했다.
잘 쓴 글일 필요는 없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이런 걸 했구나’
그 사실을 남겨두고 싶었다.
설악산의 첫눈과 가을,
12시간의 걸음,
희운각 대피소의 커피,
서울로 향하던 밤길,
아들의 “그러세요”라는 말.
그 조각들만으로도
충분히 기억할 만한 하루였다.
이제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가
천천히 다음 걸음을 준비하면 된다.
도전인지, 산행인지,
아니면 그냥 하루의 기록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번에도
나는 한 번 더 걸어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