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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몇 년의 도전을 돌아보며

내가 얻은 건 거창하지 않다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한라산에서 시작된 도전은
서울 5 산을 지나
설악산까지 이어졌다.
돌아보면 길게 보면 몇 년이고
짧게 보면 몇 번의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결과가 된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큰 도전으로 보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냥 취미 활동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 시간들은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해보고 싶어서 선택했던 일들에 가깝다.


그걸 해냈다고 해서
삶이 갑자기 바뀐 것도 아니고
특별한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다.
거창한 의미를 만들려고 애쓴 적도 없다.
그렇다고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돌아보면
내가 얻은 건 아주 단순했다.


한 번 해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감각.
그 정도였다.


그 감각이 커다란 자신감은 아니고
어디 가서 뽐낼만한 확신도 아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데는
충분히 큰 힘이 된다.


또 하나 느낀 건
도전이란 게 꼭 화려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1등도 아니고
인증기록 하나 건지기 위한 일이 아닌,
그냥
‘걸어보고 싶어서 걷는 것.’
그 마음 하나면 충분했다.


걸었던 날들은 많았지만
기억에 남는 순간은 몇 개 되지 않는다.
한라산 초입의 긴 로드,
서울 남산에서 지하철역을 나서던 순간,
관악산의 가파른 돌길,
북한산의 넓은 바람,
청계산의 길게 이어지는 흙길,
설악에서 만난 10월의 눈.


그 정도면
도전을 기록하기에는 충분한 장면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오래된 도전들을 돌아보면서 느낀 건
내가 생각보다 꾸준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크게 다짐하지 않아도,
거창하게 계획하지 않아도,
조금씩 조금씩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왔다는 것.


그 사실 하나가
요즘의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앞으로 또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조급하게 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마음이 움직이면
그때 또 걸으면 된다.

몇 년의 도전을 지나
내가 얻은 건
완주증이 아니라
“나는 내 속도로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 단순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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