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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하동까지의 첫걸음

계획과 현실 사이에서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노랑등대에서 출발해
남파랑길 47코스로 들어섰다.
이 길은 언젠가 회원들과 함께 걸어야 하는 길이기도 해서
혼자 먼저 걷는 지금의 순간이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다.


지리산 제로포인트 트레일은 총 약 85km, 누적고도 3,990m. 노랑항에서 천왕봉까지

1구간에서 4구간까지 순서대로 걸어야 완주가 인정된다.

지리산은 제로포인트 트레일 여러 도전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시간제한이 없는 코스다.

그만큼 거리와 이동 거리들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원래 전날 하동에 도착해 새벽부터 걸을 계획을 세웠지만

회사 일정 때문에 오후에 도착했고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웠다.

그래도 걸었다. 하지만 계절적으로 해가 빨리 지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렌턴 하나에 의지해 대로변을 걸어야 했다.

처음으로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무섭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까지 산과 길을 가면서, 사람을 만나면 반가웠다.

그런데 이번 길은 그렇지 않았다.

대로변을 걷다가 도로와 인도가 구분되지 않는 어둠 속의 길을 걸을 때

길 저 편에서 랜턴도 하지 않고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을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어쩜 상대방이 조용한 마을을 걸어가는 내가 더 무서웠을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하동센터를 약 1km 남긴 지점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다.

“지금 넘을까, 아니면 내일 다시 걸을까.”

할 수 없이 앞서 걸은 지인들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늦은 시간 미안했다.

그들은. “가도 된다”는 의견과 “굳이 무리할 필요 없다”는 의견이 갈렸다.


바람은 점 점 차가워지고 나의 손은 겨울이 아닌데도 손끝이 차가웠다.
내 마음은 어느새 방향을 정했다.

“그래, 내일 하자.”


멈춘 건 실패가 아니라 이 긴 도전의 호흡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지리산은 서두른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내일이면 나는 다시 이어서 걸을 것이다.
오늘의 멈춤도
그냥 과정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라고 위로 하며 이날의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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