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제로포인트 2일 차 예정)
하동호에 닿으면
지리산 자락이 드디어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든다.
첫날 노랑항에서의 헤맴,
1km 앞에서 멈춰야 했던 망설임,
그 모든 시간이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12월의 하동호는
아마 늦가을과 초겨울이 섞인 공기일 것이다.
바람은 더 차고
나뭇잎은 거의 떨어져
나무들이 겨울 몸으로 서 있을 것이다.
이날의 계획은 단순하다.
하동호에서 천천히 걷다가
위태로 해서 중산리 입구까지 가는 것.
큰 오르막은 아니지만
길이가 길어
호흡을 일정하게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
아마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차분하게 스칠 것이다.
‘내가 왜 이 도전을 시작했지?’
‘지금 내 삶에도 이런 장거리의 리듬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가끔은
길이 묻는 질문에
딱 맞는 답이 없을 때도 있다.
그저 그 순간의 나를 인정하는 것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중산리 입구까지 가면
지금까지의 도전들이 조금은 정리될 것 같다.
12월의 공기 속에서
지리산은 더 묵직하고
더 깊이 있는 산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부터 시작될
천왕봉 오르막을 떠올리며
잠시 나의 마음도 고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