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보다 중요한 것들
지리산 제로포인트 도전은
생각보다 길고,
생각보다 조용하며,
생각보다 많은 질문을 던지는 여정이었다.
노랑등대를 찾지 못해 헤맸던 첫 순간부터
어둠 속 1km 앞에서 멈추어야 했던 선택,
하동호까지 이어진 긴 호흡,
그리고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질
마지막 오르막까지.
모든 시간들이
“잘했다” 혹은 “힘들었다”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나온 나의 하루들로 남았다.
가끔은
도전을 하면 큰 깨달음이 생길 줄 알았다.
마음이 확 열리거나
삶이 시원하게 정리될 것처럼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리산은 그런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 대신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을
조용히 보여주었다.
앞만 보고 가면
옆에 있는 등대도 못 본다는 것.
가보지 않은 길을
나는 스스로 더 크게 두려워한다는 것.
사소한 친절과
누군가 남겨둔 작은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얼마나 천천히 가더라도
결국 다시 걸음을 이어가는 사람이라는 것.
도전의 본질은
결승선에 닿는 데 있지 않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걸었는지에 있다.
그 사실을
지리산은 조금씩, 반복해서 일깨워 주었다.
어쩌면
지리산 도전은
내 삶의 어떤 시기와도 닮아 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들,
뜻하지 않은 변수들,
피하고 싶었던 두려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어 걷는 마음.
내 속도가 느려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
잠시 멈춘 날들도
경로 이탈이 아니라
그때 필요했던 쉼이라는 것.
지리산은
그 단순한 진실을
길 위에 조용히 펼쳐두었다.
아마 12월의 그 추운 날,
노타리대피소에 누워 있다가
혹은 천왕봉에 서 있는 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내 속도로 걸어가는 사람이다.”
완주 여부와 상관없이
지리산 도전은 이미
내 삶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걸어온 만큼,
멈춘 만큼,
다시 시작한 만큼
이 시간은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 길의 나머지를
언젠가 다시 걸어갈 것이다.
조급함 없이,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조용히 이어서.
그게
이 도전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