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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부산, 다시 0m에서

부산친수공원에 도착하니
아침 바닷바람이 먼저 얼굴을 스쳤다.
6시를 넘겼지만 어둠은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았고,
바다 위에는 옅은 푸른빛만 남아 있었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정작 이곳은 처음이었다.
한참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곳을, 나는 왜 한 번도 안 왔을까.”


고향이라고 다 아는 건 아니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번 도전은
이 0포인트에서 출발해
금정산 고당봉까지 오르는 여정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코스를 걸어야 한다.


친수공원을 지나
부산역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침의 부산역은 여전히 분주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일터로 향하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산으로 가는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조금은 다른 속도로 걷고 있었다.


광장을 건너
초량전통시장을 스치고
초량 이바구길로 접어들자
부산 특유의 오래된 계단과 골목 풍경이 나타났다.
카페 간판과 오래된 철문,
벽에 남은 시간의 흔적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한눈에 ‘아, 여기가 부산이지’ 싶은 풍경들이었다.


구봉산으로 향하는 길은
지도에서는 단순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꽤 꾸준한 오르막이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낯설던 풍경 안에
오래전 기억 몇 조각이 천천히 섞여 들었다.


어릴 때 지나던 버스 창밖의 골목,
여름밤의 축축한 공기,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돌아다니던 길들.
걷다 보면
가끔 이렇게 기억이 먼저 따라오는 순간이 있다.


구봉산 봉수대에 닿았을 때
둘 다 말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걸음만큼은
확실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구봉산을 지나
백양산으로 접어들자
익숙함이 슬며시 밀려왔다.
부산진구에서 태어난 나에게
백양산은 오래전부터 동네 산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지
이 구간에서는 자연스럽게 속도가 붙었다.


“고향이라 그런가?
걸음이 평소보다 빠른데?”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웃었다.
그 웃음 속에
반가움도 있었고
조금 더 멀리 가고 싶은 마음도 함께 있었다.


백양산 능선에서 부는 바람은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발걸음보다 먼저 마음이 쉬어가는
그런 바람이었다.


오늘은 산책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하는 도전이었다.
그래서 더 빨리 걸어야 했고,
더 집중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양산은 묘하게 편안했다.
그 편안함이 힘이 되어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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