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똘이

by arete

강아지를 데려와도 외로움은 계속됐다. 내면의 힘이 하나도 없었다. 공무원이었던 오빠네가 지방에 발령나 있을 때 나는 더더욱 혼자가 됐다. 엄마가 두 살 정도 된 조카를 돌봐주시러 지방에 내려가셨다. 나는 늘 혼자라는 외로움에 나날이 할퀴어진 내면으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내게 전화를 하시며, 오빠네에서 대게를 사서 먹고 있는데 얼마나 맛있고 재밌는지 모르겠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는 그저 일상을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오빠네와 함께 즐겁게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열등감과 피해의식과 외로움으로 절어 있던 나는 그런 얘기를 들으며 나 자신의 삶과 비교했다. ‘나는 혼자인데 자기네끼리 먹고 마시고 흥겹군!’ 그럴 때면 내 방에서 강아지를 끌어안고 꺼이꺼이 통곡을 하며 울곤 했다. 그러면 강아지는 내 눈물을 혀로 핥아주었다. 내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내가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누나, 울지 말아요. 누나, 내가 있잖아요. 누나, 왜 그래요. 누나...누나...' 그 작고 흰 몸뚱아리를 하고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신 내 볼의 눈물을 핥아주었다.


나는 오랫동안, 내 주위의 현실적인(대개 ISTJ들...) 지인들이 소위 '거창하다'고 말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헛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그런 기질을 가진 데다 20-30대의 젊은 나는 거창하고 추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면이 많았다.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우린 죽음을 향해 가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세상은 왜 이리 폭력적이고 무서운가? 왜 모두들 자기 중심적인가? 왜 정직하지 않은가?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쉽게 상하는가? 왜 이렇게 예민한가?’ 이런 큰 질문들로 스스로를 들볶으면서도 현실에서의 문제와도 씨름해야 했다. 탈수기처럼 영혼을 탈탈 털었다.


이런 엄청난 혼란의 시기 한가운데서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좌충우돌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강아지의 이름은, 내가 다니던 회사 상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짓게 되었다. 우리 강아지의 성격에 걸맞은, 소박하고 단순하고 귀여운 이름을 짓고 싶었다. 명징하고 경쾌하고 활기찬 이름, 잘난 체하지 않는 이름, 정직하고 담백한 이름을 원했다. ‘똘이!’ 떠올리는 순간부터 입에 착 달라붙었다.

똘이는 2kg 정도 되는, 누가 봐도 인형 그 이상으로 예쁜 말티스 강아지였다. 외모도 예쁜데 성격도 촐랑댔다. 친구는 ‘똥꼬발랄 똘이’라고 불렀는데, 총총총총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걷는 것만 봐도 그 별칭이 꼭 들어맞았다. 사람을 유독 좋아하는 똘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똘이는 껌딱지처럼 나를 졸졸 쫓아다녔다. 내가 바닥에 엎드려 책을 오래 보고 있으면 그 책 위에 철퍼덕 엎드리기도 하고, 자기를 봐달라며 한 발로 내 팔을 긁기도 했다. “고기 줄까?”라는 소리만 들으면 그때부터 위아래로 펄쩍펄쩍 뛰며 부엌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가자~”라는 소리만 들으면 현관 쪽으로 슬라이딩하듯 뛰어나갔다. 내가 책상에서 작업을 하다 나와보면 현관 앞 신발 위에서 웅크리고 잠들어 있기도 했다. ‘이 좋은 날씨에 나가고 싶다고요~~~!’ 온몸으로 시위중인 것 같았다.


말 없는 산책자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내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무엇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기 어려웠다. 사람의 삶은 사랑과 연결이라는데(<애도연습>, 정혜신) 이렇게 내 자리를 찾기가 어렵다니....쉽게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랑을 구걸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열등감이 심하니 자존심도 강한 것이었다. 거절을 당하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나 자신은 사랑할 만한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어 보였다. 성취로 나를 증명하고자 했다. 일에서 조금씩 성취가 있었을 때 일시적인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곧바로 다음 성취를 향해 달려야 했다. 언제나 미래를 생각했다. 미래에 나는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되어야 하고.... 내가 되어야 할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면 현재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언제나 부족했다. 끝없이 준비해도 모자랄 것 같았다. 무엇을 향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 채 막연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가득 채웠다. 왜 이렇게 공허하지? 헛헛하지? 그렇게 느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여러 가지를 배웠다. 정신분석, 시, 기도 등....정식 학교에 들어가면 옭아매일 것이 싫어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주제나 시스템을 선택했다. 막연하게 나는 작가가 되길 원했다. 무엇을 쓸지는 몰라도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것이 내 선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훌륭한 작품들에 비하면 나의 글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배우고 읽고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언제까지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작가의 모습이란 무엇일까. 결국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작가라고 인정해줄 만한 그런 작가를 원한 것 같았다. 궁극적으로 작가가 되면 내면의 자유를 얻을 것 같다는 환상이 있었지만, 글을 쓰고 책을 내도 내면의 자유는커녕, 이 분야에서도 타인의 관심과 인정에 목말랐다.


성취를 향해 매진할 때 그나마 순간순간 나의 숨통이 되어준 것이 똘이와의 산책이었다. 사람과 산책을 하면 주변 환경과의 교감에 많은 방해를 받는데, 똘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똘이는 말 없이 나와 함께 주변환경과 교감하며 걸었다. 우리는 우리 집 근방을 부지런히 걸어다녔다. 원래도 걷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똘이와 걷는 시간이 큰 힐링의 시간이었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그렇지만 완전히 혼자라면 외로울 것 같을 때 똘이가 곁에서 함께 걸어주었다. 물론, 똘이는 너무 작은 동물이어서 체력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원체 밖에 나가는 것과 먹는 것을 좋아하는 강아지라 그 체구치고는 상당히 오랜 시간 밖에서 돌아다녀도 괜찮았다. 문제는 우리집으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우리집은 경사진 언덕 위에 있어서, 나이가 들어가며 똘이는 올라오는 길로 방향을 틀면 꼼짝도 안 하곤 했다. 집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 밖에 있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안고 가라는 걸까. 꼭 안고 가라는 건 아니었던 거라고 짐작되는 것은, 집과 반대되는 방향으로는 계속 계속 걸어가길 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로 재택을 하던 시절엔 일을 마치고 오후에 자주 그렇게 산책을 가곤 했다.


언젠가는 일을 마치고 산책을 가는데 역시나 똘이가 한쪽으로 하염없이 걸어가는 것이었다. 들어올렸다 내려주며 집 쪽으로 방향을 돌려도 똘이는 다시 방향을 틀어 한 방향으로 걷고 또 걸었다. 언젠간 똘이가 이끄는 대로 하염없이 따라갔다. 그런데 하필 퇴근 시간이었다. 30분쯤 걸려, 우리집 근처보다 한 정거장 뒤의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무렵엔 어마어마한 인파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작은 몸통으로 똘이는 용케 사람들 틈을 빠져나가 촐랑촐랑 걸어갔다. 한참을 직진하다 왼쪽으로 걷고, 또 직진하여 걷다 왼쪽으로 걸으니 다시 우리집 방향이 되었다. 거의 두 시간이 다 되었다. 문제는, 가볍게 산책하려고 핸드폰도, 신용카드도 안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이 홀가분하게 걷고 싶어 그렇게 했는데 아뿔싸, 완전 착오였다. 똘이라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가를 데리고 다니려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나왔어야 했는데. 인생은, 특히 개와 함께 하는 인생은 예측불가이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가 걸을 수 있는 마지막 지하철 역이 되자 똘이는 더 이상 꼼짝하려 들지 않았다. 그때부터 똘이를 안고 걷기 시작하는데 허리가 너무 아팠다. 전화도 할 수 없고, 돈도 없고....그렇다고 핸드폰을 빌려 전화를 하자니 염치가 없고....중간중간 등장하는 벤치에 앉아 쉬면서 똘이를 안고 하염없이 걷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거대하게 한 바퀴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코스는 높은 언덕길! 말도 못하는 똘이에게 뭐라 할 수도 없고, 속으로 징징대며 벤치에 앉아 쉬다가 걷고 쉬다가 걷길 반복한 끝에 마침내 집에 도착했다. 똘이를 안은 팔과 허리가 얼마나 아팠는지! 자식을 괴롭히면 손자도 싫다는데, 그날 엄마는 똘이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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