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아침에 일어나면 심장이 덜컹 내려앉거나 무기력한 슬픔에 가라앉을 때가 많다.
‘내 곁에 똘이가 없다!’
10개월이 다 되어가는데도 좀처럼 그의 부재를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오랫동안 나와 한 침대를 쓰고, 그 조그만 몸으로 내 베개를 온통 차지하여 내 머리는 베개 옆으로 밀려나 있곤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똘이는 자주 내 등에 자기 등을 맞대고 눕곤 했다. 내가 일부러 옆으로 비켜나보면 똘이는 뒤로 슬금슬금 몸을 움직이며 내 등에 몸을 밀착시키곤 했다. 그 조그만 몸의 온기가 얼마나 따뜻하고 안온했는지.
똘이가 18년차로 접어들어 많이 쇠약해지면서, 혹시나 침대에서 떨어질까봐, 그리고 누운 채로 오줌을 싸는 일이 잦아졌기에, 기저귀를 채우고 내 침대 아래 똘이 침대를 두고 재웠었다. 여름에는 거실로 잠자리를 옮겨 요를 펴고 내 요 옆에 똘이 침대를 두고 거기서 재웠다. 마지막 1년 정도는, 내가 중간중간 깨거나 아침에 일어날 때 똘이의 숨소리를 확인하고 입맞춤을 해주는 게 루틴이었는데, 이제 그런 루틴도 사라졌다.
한여름이 되어 다시 거실로 잠자리를 옮겼다. 요즘은 똘이의 유골함을 거실 TV장 위, TV 옆에 두었다. 똘이의 유골은 황금색 보자기 속, 종이 상자 속, 황토함 안에 들어 있다. 빛이 들지 않도록 잘 보호해둔 것이다. 봄까지는 내 서재에 두었으나 에어컨 바람이 잘 들어가지 않는 방안은 너무도 습하고 후끈하기 때문에 혹시나 유골 상태에 영향을 미칠까봐,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자 거실로 옮겨왔다. 유골함이 전혀 무섭지 않고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똘이뿐인 것 같다. 똘이는 나에겐 언제나 가엽고 귀여운 대상이었다. 보호해주고 돌봐주고 예뻐해주고 놀아주어야 하는 존재. 영원히 크지 않는 아기 같은 느낌이었다. 보호자를 의지하고 보호자와 교감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기 원하는 그런 아기 같은 존재가 떠나고 내게 유골과 추억만 남았다.
똘이의 유골함은 황토함으로 땅속에서 자연분해되는 소재다. 대신, 1년 정도만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 1년이 가까워지는 9월 말경에 나는 똘이를 묻어주려 한다. 유골함 부근은 아기자기한 마을로 꾸며두었다. 이미 영혼은 하늘나라로 갔겠지만....나의 자기만족인 줄은 알지만....그래도 외로울까봐 똘이의 유골을 지켜주는 식물들과 똘이처럼 작고 귀여운 각종 피규어들, 똘이 사진, 그리고 LED로 된 추모 초로 둘러싸주었다.
가끔, 우리집보다 윗층에 사시는 아주머님을 엘레베이터에서 만난다. 똘이가 많이 쇠약해졌을 때 똘이를 안고 집앞 아파트 단지를 돌고 있을 때 자주 마주치던 분이다. 아주머님도 강아지를 키우고 계셔서 강아지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곤 했다. 똘이가 가고 나자 엘레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주머님은 내게 종종 물으셨다. "강아지 가고 나니 편하지?" 나를 위로해주시려는 뜻이었다. "아니오....너무 슬퍼요...." 그러자 "아직?" 하고 아주머님은 안쓰러운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셨다. 또 한번은 "이제 좀 잊었어?" 물으시길래 "어떻게 잊어요...." 하다가 눈물이 울컥 솟아올랐다. 어떻게 잊어요.....평생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을 텐데요.....
20년 가까이 자식처럼 키우고 떠나보내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얼떨결에 강아지를 키울 생각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엄마가 아기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을 강아지에게 느낄 수 있었던 걸 생각하면 그 경험은 또 포기할 수 없다. 처음 키우게 됐을 땐 잘 몰랐지만 점차 기른 정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결혼을 하지 않은 나로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달리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제목에 끌려 우연히 집어들었던 <슬픔의 위로>(메건 더바인)에서는 슬픔을 빨리 외면, 회피하고 극복해야 할 감정으로 치부하는 현대 문화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 사람들은 슬픔, 비탄, 고통을 경험하는 자 자신에게 뭔가 잘못된 것이 있으며, 스스로 회복을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했다. 이 저자는 갑작스런 익사 사고로 남편을 잃었는데, 남편을 잃은 지 5주 정도 지났을 때 사람들에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왜? 무슨 일 있어?"라고 묻더니 남편을 잃어서라고 답하자 "아직도야? 아직도 그 일 때문에 괴로운 거야?"라는 반응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와....설마....그런 반응이 보편적이진 않겠지....’ 읽으면서 생각했다. 하지만 자꾸만 긍정적 사고나 긍정적 태도로 슬픔을 빨리 극복하도록 종용하는 것이 미국 문화라 했다. 이런 반응을 폭력적이라 정의하며, 저자는 성장과 발전의 핵심은, 바로잡으려는 시도가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정을 나누는' 일이라 말한다. '삶의 진실을 보고, 경청하고, 증언하는 것'이 슬픔을 치료하는 단 하나의 진정한 치료약이라는 것이다. 결국, 슬픔을 치료하는 것은 매우 '관계적'이라는 것이구나. 슬픔을 당한 자의 슬픔을 함께 들여다보아주고, 그 슬픔을 들어주고, 바닥을 알 수 없는 슬픔의 바다를 건너고 있는 사람과 함께해주는 이가 주위에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슬픔은 영원히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만 남아 있진 않겠구나.
그렇게 보면 사회적, 국가적 재난이라고 볼 수 있는 대형 참사 때마다 우리나라엔 유족들과 함께해준 숱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신 싸워주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함께 곁을 지킨 사람들이 더 많았다. 개인주의가 깊숙이 들어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겐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가 있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돌연 떠올랐다. 때로 지나친 오지랖이나 획일적 사고방식의 종용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하지만, 슬픔에 함께하고 불의엔 함께 저항해야 한다는 의식은 이미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 깔려 있는 공동체 문화 때문 아닐까.
어쨌든 이제 똘이를 떠나보낸 지 10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 여전히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자주 자책하고, 종종 몸서리치게 그리워하는 이 과정이 지극히 정상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내 곁엔 이 이야기들을 함께해줄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지금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들이 계시니, 나는 서서히 이 과정을 거치며 치유되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