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이의 눈높이로 바라본 세상

by arete

추억은 모래사장 위 흩어진 조개껍데기와도 같다. 어떤 것은 조그맣고 반짝이며, 어떤 것은 거칠고 울퉁불퉁하다. 모두 각기 다른 모양대로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똘이와의 추억도 마찬가지다. 잔잔한 일상처럼 편안한 모양을 띠고도 있고, 심장이 떨어질 만큼 충격적인 사건 사고도 있다. 가슴 시릴 정도로 아프고 가여운 기억도 있다.


올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 집을 나서는데 우리 아파트 앞 화단에 봄 기운이 완연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었고 화단에는 철쭉들이 피어 있었다. 2024년 봄의 어느 날, 똘이의 몸을 들어올려 이 철쭉들 쪽으로 향하게 한 채 찍은 사진이 있다. 눈이 멀어버린 똘이에게 꽃 냄새를 맡아보라고, 봄 내음을 맡아보라고. 똘이는 적극적으로 냄새를 맡진 않았다. 후각까지 많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햇살이 눈부실수록 눈이 먼 똘이는 마치 무언가가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고개를 뒤로 피하곤 했다. 자동적으로 고개를 덜덜 떨면서 뒤로 젖히는 모습은, 마치 태양이 그를 가격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한여름의 태양열이 인간을 가격하듯, 눈이 먼 강아지에겐 강렬한 빛 자체가 공격일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똘이의 눈을 손으로 가려주면 똘이는 그제야 진정됐다. 어둠과 빛이 섞일 수 없음을 똘이는 눈먼 현실을 통해 보여주었다.

하지만 따사롭고도 안온한 추억도 있다. 똘이는 시인 같은 면모가 있었다. 자주 베란다 입구에 서서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 냄새를 맞곤 했다. 가만히 서서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하고는 코를 벌름거렸다. 그럴 때면 똘이의 코는 1초에 몇 번이나 움직이는지 가늠이 안 될 만큼 빨리 움직였다. 바람 같은 속도로 바람 냄새를 맡는 강아지 시인. 그는 창턱만큼의 키도 되지 않아 창밖을 내다보진 못했으나 바람으로 창밖의 세상을 느끼려 했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또한, 똘이는 기다림에도 선수였다. 집에 들어설 때면 똘이는 언제 기척을 알아챘는지 이미 현관에 나와 나를 맞이해주곤 했다. 아마도 나를 기다리며 현관에 있는 내 신발 위에서 자고 있었거나,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리자마자 뛰쳐나왔을 것이다. 내가 일에 몰두하여 똘이에게 신경쓰지 못할 때면 산책 나가길 바라며 신발 위에서 조용히 잠을 청한 채 나를 기다렸다. 그렇게 현관은 그에게 기다림의 장소였다.


언젠가 뒷산 쪽으로 가는 언덕을 똘이와 함께 오르고 있었다. 바로 옆 도로에는 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똘이는 키가 너무 작아 펜스 아래에 시선이 놓여 있었다. 나도 한번 엎드려보고 싶었다. 똘이만큼 키가 작은 동물들은 세상을 어떻게 볼까? 저 차들이 어느 만한 크기로 보일까? 전체가 다 보이긴 할까? 차 바퀴의 일부만 보이지 않을까? 소리는 또 얼마나 크게 들릴까? 모든 게 인간의 기준으로 크기가 맞춰진 이 세상이 똘이에겐 거인의 세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걸리버가 거인국에 표류하게 된 것처럼. 발에 밟혀도 모를 정도로 조그마한 생물체로 태어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무심하게 걷고 있는 듯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를 것 같은 똘이의 감정, 느낌, 기분, 생각을 알고 싶어 나도 똘이만큼 저자세(나로선 거의 포복하는 자세)로 기어가보고 싶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 실행에 옮길 순 없었지만...얼마나 거칠고 커다란 소리일까. 그가 걷고 있는 아래쪽엔 얼마나 먼지가 많을까. 땅의 흔들림도 얼마나 잘 느껴질까. 작은 충돌도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 작은 들꽃과 다른 개들의 흔적들은 얼마나 잘 느껴질까?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똘이와 걷는 길은 비슷한 산책처럼 보이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전혀 다른 존재의 눈높이에 맞춰 세상을 바라보려는 작은 시도는, 익숙했던 풍경들을 때론 낯설고 불편하게, 때론 신선하게 다가오게 했다. 똘이는 그것을 조용히 내게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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