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이는 내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난생처음 뜨겁게 좋아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몹시 허덕이고 있던 때였다. 연애에 대한 이상이 높았던 나는, 그때까지 만났던 사람들과는 연애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몸과 맘을 내던져 서로를 불태워버려, 그는 나만, 나는 그만, 생각할 정도로 감정이 뜨거워야 연애라 생각했다. ‘나는 드디어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사랑을 이룬 거야!’
불타오른 사랑은 얼마 가지 않아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유치하기 짝이 없던, 사랑에 대한 환상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내가 얼마나 불안한 존재인지, 나와 상대는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헤어진 후 나의 한 부분이 뜯겨 나간 것 같았고, 나의 잘못과 나라는 존재의 사랑받지 못할 특성을 파헤치고 또 파헤치며 수많은 밤낮을 울부짖었다. 집 근처 교회의 어두침침한 지하 기도방(독방)에 들어가서 엉엉 울고 눈물로 방석을 적셨다. 하루종일 나 자신을 탓하고 미워하고 때리다 퇴근을 하면 온몸에 진이 다 빠졌다. 그러고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채찍질을 맞은 정신 때문에 온몸에 긴장이 되어 그 교회 기도방에서 그렇게 울어대야 그나마 몸의 긴장이 해소가 되었다. 운동을 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운동을 해보라고 조언했지만, 나는 매우 근원적인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깟 운동이 내 근원적인 문제에 도움이 되리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의미가 없었고, 오직 하나, 사랑을 찾아야 했다. 나에게 사랑만 있으면 될 것이라 믿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정말 고귀한 영혼을 소유한 남자와 짝을 맺으면 난 이 모든 게 해소되리라 믿었다. 그러니, 드디어 내가 찾았다고 생각했던 소울메이트와 헤어지자 나는 정신이란 게 다 사라지고 말았다. 모래로 겨우 쌓아올린 영혼의 성은 먼지처럼 흩날려버렸다. 난 일종의 우울증이었다. 머리가 늘 무거웠고, 가슴엔 늘 역기 같은 무거운 것을 매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지만, 해방될 길을 찾지 못했고, 오히려 그것에 익숙해 있었다. 난 그럴 만한 존재였고, 그렇게 사는 게 천형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글을 쓰는 예술행위를 하려 했다. 그것이 내 존재감을 느낄 유일한 탈출구라 생각했다.
그 후로 2년쯤 뒤에 강아지를 들이게 되었다. 2007년 4월 17일 출생. 친척의 강아지에게서 난 새끼강아지 중 가장 예쁜 말티스였다. 강아지가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는 예방접종 등을 모두 마친 7월쯤이었다. 강아지를 키우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 없었고, 당연히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도 못했다. 엄마는 살아 있는 동물 키우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지만, 내 우울증에 도움이 될 거란 얘기를 듣고 입양을 결정했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큰 희생을 치른 것이다. 엄마는 모든 게 제자리에,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기를 바라는 깔끔한 성격이었는데, 꼬물꼬물 움직이고, 오줌을 싸고 똥을 싸는 동물이 집에 들어온다는 건 엄마로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요구한 것도 아닌데, 엄마가 강아지를 들이기로 결정한 것은 내가 그만큼 심각해 보여서였을 것이다. 내 평생을 지배한 것은 외로움이었으니까. 나는 '혼자'라는 것을 24시간 인식할 정도로(실은 잠잘 때만 빼고) '홀로임'에 민감하고 예민했다. 특히 대학생 때는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외적으로는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엄청나게 사람들을 찾아 헤매며 이곳 저곳 쏘다녔지만, 거의 강박관념처럼 '나는 혼자다'라는 생각을 붙들고 살았다.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 헤맸지만, 내가 원하는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고, 날 만나길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초라해 보였다. 나는 세상에 내던져진 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람처럼 마음이 헐벗어 있었다.
태어난 지 3개월 정도밖에 안 된 강아지는 정말 작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강아지가 몽글몽글 뒤뚱뒤뚱 거실을 걸어 다니는데, 걸어 다니는 하얀 인형 같았다. 강아지와 어떻게 놀아줄지도 모르겠고, 익숙하지 않아 첫날은 그저 바라보고 인형도 줘보고 그랬던 것 같다. 한창 재택 일을 하고 있는데 강아지가 와서, 나는 잠깐 놀아주다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넌 강아지가 안 이쁘니?"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 기껏 강아지를 데리고 왔는데 내가 관심도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셔서였을 것이다. 이쁘지 않은 게 아니라 나는 일에 골몰해 있었고, 그저 스트레스와 고통이 내 삶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그땐, 강아지를 보내고 나서 내 전부를 잃은 것 같은 슬픔을 느끼게 되리란 건 상상치도 못했다.
첫날 저녁, 엄마의 말대로 케이지와 함께 강아지를 다용도실(세탁기와 물대야 등이 놓여 있는 제법 넓은 공간)에 두었다. 강아지는 지저분하니까 사람 사는 곳과 강아지 사는 곳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지만 어쨌든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로서는 다용도실에 강아지 집을 놓고, 사료와 물도 갖다놓았다. 조그만 똘이는 그곳에서 계속 낑낑 소리를 냈다. 환경도 바뀌고, 곁에 사람도 없고, 밤의 어두운 공간에서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외롭고 쓸쓸하고 적응이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용도실로 향한 창문으로 강아지를 계속 내다보며, 저기 저렇게 두어도 될까? 괜찮을까? 몇 번이나 엄마에게 묻다가 강아지를 거실로 데려왔다. 그렇게 난생처음 낯설고도 귀여운, 잘 몰라서 두렵지만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동물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