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 꽃이기 때문이야

by arete

얼마 전 3년여 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에게 말했다.

"나...상을 당했어."

친구는, 조심스럽고 당혹스러운 톤으로 물었다.

"어.....정...말.....?"

혹시나 나의 가족 중 하나가 세상을 떠난 건가 싶은 목소리였다.

"응....우리 똘이가 세상을 떠났어."

다른 사람이라면 이내 안도감 서린 목소리로 바뀌었겠지만 친구는 낮고 조심스런 톤을 계속 유지했다.

처음이었다. 17년 5개월 동안 나와 함께한 강아지의 죽음을 '상을 당했다'라고 표현한 것이. 그런데 말로 내뱉고 나니 이보다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 없음을 알았다. '펫 로스 증후군'이라는 말은 인간은 아니되 사물보다는 급이 높은 소유물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으로 와 닿는다. 사람 가족을 잃었다고 해서 패밀리 로스 증후군이라고 하진 않잖는가. 똘이의 죽음은 내겐 가족상과 완전히 같았다. 조문객 없는 장례식, 공유하기 어려운 슬픔, 나 혼자 하는 추모라는 것이 사람의 죽음과 다를 뿐이었다.


"죽음이 주는 상처는 무엇을 어떻게 상상하든 그 이상입니다."(정혜신, [애도연습])


똘이의 죽음이 곧 다가올 미래라는 것은 그의 눈이 멀기 시작하면서 예감된 것이었지만, 막상 그 사건이 닥친 후의 절망은 말 그대로 '상상 그 이상'이었다. 수개월간을 자책하고 그리워하고 미친 듯이 보고 싶어 하고 만지고 싶어 하고 냄새 맡고 싶어 하고 때론 익사해가는 심정에 다다르기도 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지금도 깊은 고통이 근간에 자리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침몰하는 고통 가운데서 서서히 빠져나오면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똘이를 키우고, 똘이를 보낸 지금, 나는 똘이가 태어나기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똘이가 내 곁에 없다는 물리적 현실은 똘이가 내게 오기 전과 같아졌지만, 나라는 사람의 정신적, 정서적 현실은 똘이 이전과 똘이 이후로 나뉠 만큼 그의 생과 존재는 나에게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이 글은, 똘이가 떠난 직후 똘이의 몸을 오래오래 어루만지고 입맞춤하면서 건넨 말에서 비롯되었다.

세상에 똘이와 비슷하게 생긴 말티스 소형견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내가 길들이고 나를 길들인 강아지는 똘이가 유일무이하다.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어린왕자.jpg

"내 꽃도 지나가는 사람에겐 너희와 똑같아 보이겠지. 하지만 나에게 그 꽃은 너희 모두보다도 더 소중해. 나는 내 장미에게 물을 주었고, 유리덮개를 덮어 주었고, 울타리를 만들어 보호해주기도 했어. 벌레도 잡아주었어. 불평을 하거나 잘난체하거나 때론 침묵을 지키는 것을 귀기울여 들어준 것도 내 꽃이기 때문이야."(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내 꽃이기 때문이야. 내 강아지이기 때문이야. 꽃도 나와 관계를 맺으면 특별한 꽃이 되듯이, 강아지도 나와 관계를 맺으면 이 세상 유일무이한 강아지가 된다. 그리고 그 강아지와 나눈 교감과 사랑은 내 영혼 깊이 새겨져 그와 관계 맺기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나로 변화하게 만든다.


똘이가 지구별에 있었던 흔적을 이 세상에 꼭 글로 남기겠다고 똘이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 글은 결코 똘이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온 마음을 쏟아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반려동물에게서 받은 사랑에 깊이 감사하고, 그 사랑을 통해 이 세상 또 다른 존재들을 사랑할 마음을 갖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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