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에서 먹이사슬 최상단의 짐승들이 날렵한 몸놀림을 자랑하며 초원을 뛰어다닐 때 늘 그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먹잇감.
처음 조직생활을 시작했을 때 상사가 나를 볼 때마다 했던 말은 '네가 사회에서 어떤 일을 했든 가방끈이 얼마나 길든 여기서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내 가방끈은 그리 길지 않다. 해져서 끊어져가는 끈을 겨우 꿰매어 놓은 수준이다. 하지만 그 상사는 사무실 뒤편 소각장에서도, 매일 아침 있는 회의시간에도 SNS 저격글 같은 멘트를 날리며 이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같이 다닐 때마다 계속 내게 돈을 내게 하는 선배, 운동화를 신었다고 주말까지 연락해서 내 옷차림을 지적하는 선배, 주말까지 나와서 밤 12시까지 포토샵을 익히지 않는다고 호통 치던 선배, 다른 사람과 내 이름을 헛갈려서 나를 불러내 '일할 의지가 없다'며 혼내놓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선배, 자신이 나에게 한 짓을 내가 사람들에게 말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다른 직원들에게 여론전을 펼치던 선배, 내 잘못이든 그들의 잘못이든 선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여지없이 '대화'의 탈을 쓴 '비난'이 쏟아졌다. 나는 그저 못하면 못하는 대로 잘하면 잘하는 대로 혼이 나야 하는 존재였다.
그래도 다 감내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길바닥에서 엉엉 운적도 있고, 퉁퉁 부은 눈으로 사리분별 못하고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한 적도 있지만 그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라 생각했기에 참았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고 생각했다.
내 곁에 나를 믿는 좋은 사람이 있었고, 나의 업무 실력은 전국적으로 주목받을 정도로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다.
4년이 흘렀다.
내가 믿었던 선배는 상사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나를 이용했다.
상사의 억압적인 횡포가 싫었던 그 선배는 사무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총대를 맬 테니 진술서를 써 달라 했다.
많이 고민 했다.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
하지만 내 고민의 끝엔 하나의 질문만 남았다.
'내가 부끄럽지 않으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 누구보다 부당함을 많이 겪은 내가 침묵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일까, 진실을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일까, 그것도 또 다른 가해라며 진실을 묵혀둬야 할까.
결국 진술서를 썼다.
쓰고 보니 나는 혼자였다.
나 말고는 아무도 나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 상사는 나를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그의 기준으로는 가방끈이 길고 미혼의 젊은 여자였던 나를 희롱하는 것은 아주 재밌는 농담이었다. 조용한 조직에 시끄러운 가십거리가 요리조리 피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서 '요즘 것들의 무서움'을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 모든 이야기에는 총대를 매겠다던 그 선배의 이름이 아닌 내 이름만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총대를 매겠다던 그 선배는 나를 위하는 척 '사람들이 의심하면 긍정도 부정도 하지 마라'는 말로 나를 다독이며 자신의 몸을 숨겼다.
물론 내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를 '이용'이라고 평하는 이유는 그 선배가 나와의 인연을 끊었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진실의 전장이랍시고 몸을 던졌던 내가 이제는 불편해진 것이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진가 보다. 멀리서 응원할게.'라는 그 선배의 메시지를 읽고 그 선배가 절대 나를 응원하지 않으리라는 것, 어쩌면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 더 신랄해질 것이라는 직감이 신의 계시같이 명징하게 느껴졌다.
사무실을 옮겼다.
이전과는 다르게 구성원 대부분 내 또래였다.
그 사무실을 가기로 결정하기 전 그곳의 직원과 상담을 했었다. 내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여기서는 네 할 일만 열심히 하면 아무도 너에게 뭐라 하지 않으니 걱정 말라.'라는 확답을 받았다.
하지만 그 말대로 열심히 일 한 내가 바보였다. 사람들에게는 내가 그저 승진 경쟁자일 뿐이었다.
그 사무실로 옮긴 2주 만에 내 옆에 앉아 있던 어린 직원이 나를 불러내 내가 비밀번호를 잘못 알려준 것이 꿍꿍이가 있어서 그런 것이냐고 따져 물었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꼬투리 잡았다. 조직 위계로 보나 사회생활로 보나 내가 선배였지만 기분 나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보이지 않는 주홍글씨가 있었다.
한 달쯤 돼서는 다른 직원들이 그 직원의 자리에 공공연히 '우리는 네 편이야. 힘내'라는 쪽지를 붙여놓았다.
6개월쯤 지나서는 또 다른 직원이 '사무실의 한 선배가 나를 예뻐해서 사무실 전체 분위기가 나빠졌다'며 상관에게 보고하기 이르렀다. 은밀하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승진하려면 아랫사람의 평가도 중요했던 상관은 직원들의 눈치를 봤다. 그 이후로 나는 칭찬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회의 시간에 내가 한 일로 칭찬이라도 받으면 마치 내가 성과를 빼앗기라도 한 듯 공공연히 다른 사람을 편들며 나를 무안하게 만드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1년쯤 되었을 때는 상관이 시키는 일을 했다고 어린 직원이 이틀 동안 개구신을 죽였고, 그에 대해 처음으로 분노를 표하자 다른 모든 여직원들이 몰려와 나를 탓했다.
그때 내가 들은 말은
'일 시킬 줄 모르고 그 일을 상관에게 보고한 거냐.'
'너 혼자 일하면 안 된다. 너 혼자 일한 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나도 저쪽 편이다. 너는 동료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 등등이었다.
'얘들이 왜 이러지.' 하고 생각했다.
말이 안 되는 말을 말처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도 듣지 않았다.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고 나의 마지막 남은 정신적 성채는 무너졌다.
나는 살면서 가장 집요한 악의를 느꼈다.
그 이후 사무실은 더 큰 웃음소리와 더 긴밀한 친밀감으로 시끄러워졌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다수의 논리는 무적이라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들이 나에게 한 짓은 나를 위해서 한 일로 예쁘게 포장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 척했다. 어차피 자기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니 훌륭하게 중립을 지켰다. 본 것도 못 본 척, 들은 것도 못 들은 척, 그들이 내게 한 변명은 ‘더 큰 싸움으로 만들기 싫다.’는 것이었다.
이 일을 겪고 처음 내가 한 일은 자학이었다. 모든 일은 내 탓이라 생각했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를 지켜봐 왔던 내 남편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아직도 '내가 잘못 생각했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내 안으로 침잠하기 시작한 내 멱살을 붙들고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내 남편의 냉철함이었다.
나는 검은 물에 잠긴 사람처럼 굴었다.
하루 종일 누워 자극적인 영상을 봤다.
유튜버들의 시원한 욕설에 해방감이 느껴졌다.
씻지도 않고 잠만 잤다.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심리상담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뛰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고
목욕도 하고
살아있는 감각을 쓰는 일을 시작했다.
감각을 콕콕 찔러 우울한 상상의 바다에서 나를 억지로 건져냈다.
강아지 크림이를 만났다.
눈을 뜨기 싫었던 아침시간이
크림이 밥 주기, 응가 치우기, 산책시키기, 목욕시키기로 가득 찼다.
일기를 썼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 감정이 어땠는지 철저히 내 관점으로 솔직하게 일기를 썼다.
책을 읽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사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사람을 피했다.
인간의 존재가 소름 끼치게 두려웠다.
그래도 억지로 몇몇 사람을 만났다.
이럴수록 사람을 끊으면 안 된다는 남편의 조언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니 무언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조짐은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우울해 보인다고 했고 나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예전보다 더 괜찮아지고 있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우울해 보일까봐 걱정돼서 더 웃고 더 활기차게 일하려고 애썼다. 떠맡은 일에 시달리면서도 웃었다. 승진 욕심이 많았던 상관은 사람들에게 내가 일을 좋아해서 일을 막 시켜도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시키는 일 다 할 테니 제발 나를 공격하지 말아 달라고 온 몸으로 말했다.
이제는 회복했냐고 묻는다면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더이상 나를 탓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천천히 이해해 가고 있다. 멀리 떨어져 그 일을 바라보다보니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어떤 생각이었는지 조금씩 실타래가 풀렸다.
내가 업무를 잘해내면 자신들의 노력이 평가절하 될 것이라는 두려움, 승진하려는 꿍꿍이가 있었던 거 아니냐는 의심, 내 인정욕구가 악의로 인한 것이라는 확신,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오해, 그리고 나보다는 자신들의 편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실제로 그들은 가족들도 조직 내 구성원이었고, 같은 동문이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동질감과 친밀감으로 이룩해 놓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불편한 균열이었다.
나는 이제 그때 내가 겪은 것이
'가스 라이팅(Gaslighting)'이라고 정의한다.
가스라이팅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목적을 숨기고 상대방을 위하는 척 상대방의 행동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점진적 심리 폭력이다. 미국의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이 쓴 책 ‘가스등이펙트(Gaslight Effect)'에서 처음 나온 용어로 이는 1944년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 '가스등'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영화의 아름답고 부유한 여주인공 폴라는 그녀의 보석을 가로채려는 검은 속내를 가진 남편 그레고리의 계략으로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는다. 그러다 나중에는 그녀도 자신이 미쳤다고 믿기에 이른다. 결국 형사에게 진실을 듣고 자기가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기 자신을 되찾게 된다. 영화에서처럼 로빈 스턴의 책도 주로 남녀관계에 국한된 가스라이팅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스라이팅은 생각보다 흔한 현상이다. 조직의 상하관계, 다수와 소수의 관계, 즉 평등하지 않은 모든 관계에서 이 같은 현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책에서는 가스등효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단지 힘겨루기뿐인 대화는 어떻게 알아 차려야 하고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로빈 스턴은 운동을 하고, 일기를 쓰며 스스로의 내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라는 조언을 한다. 그리고 자신을 지키는 시기에는 “아니오”라는 말을 더 자주 쓰라고 말한다.
나는 아직 배고픔을 느끼듯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모든 일이 지금 내 눈 앞에서 일어나는 듯 생생하다.
이번 여름에는 단지 그때처럼 더웠다는 이유로 꿈에서도 아침에 눈을 떠서도 깨어있는 내도록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심리상담 선생님은 그런 게 트라우마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