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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Nov 19. 2024

중학교 원서작성이 뭐길래

중요한 건 불안하지 않은 부모의 모습이다


아들이 중학생이 된다니. 이고 세월아. 내가 마흔이 된 것도 놀라운데 아들이 중학생이 되는 건 더 놀랍다.


본을 내고 원서 작성하라는 가통을 받아오니 실감이 난다. 근데 이놈의 중학교 입학 원서작성이 뭐라고 내 안의 불안이가 이렇게 또 널을 뛰는지 모르겠다.







집에서 걸어갈 위치에 중학교가 하나 있었으면 고민할 것도 없이 거기를 적었을 거다. 가까운 건 중요하니까. 조금 안 좋은 평이 있대도 그랬을 거다. 문제는 우리집 근처엔 걸어갈 중학교가 없다는 거다. 

버스타고 갈 근거리 1순위인 A학교는 남중이다. 평이 꾸준히 안 좋다. 서열 문화가 심하고 몇몇의 과격한 운동부 학생들로 학폭 문제도 꽤 있어온 곳이다. 그 학교두 배 거리에 근거리 2순위 남녀공학 B학교가 있다. A학교는 날 좋은 날 맘먹으면 친구랑 걸어올 수는 있는 거리인데 B학교는 도보 통학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버스가 자주 오는 대도시냐 그것도 아니거든요...


거리만 보고 A에 보내자니 왜소하고 소심한 이 아이를 남중에 보내도 될까 싶으면서, 그래도 각종 이성문제로 쉽지 않을 공학보다 나을까 싶은 마음이 맞선다. 아니야, 그래도 조금이라도 가까운 게 낫지 하다가, 조금 멀더라도 공학에서 남자고 여자고 조화롭게 지내는 법을 아는 게 낫지 하는 마음이 맞선다.

어차피 근거리 1순위 우선배정일 텐데 왜 고민하냐 할 수도 있는데, 원래대로라면 그렇겠지만 다자녀 특별 혜택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 거리와 상관없이 가고 싶은 곳을 우선배정해 준다고.(이런 데서 덕을 보네)

그럼 아이의 의견은? 아들은 어디서 A남중의 무시무시한 얘기를 이렇게 저렇게 듣고 와선 B학교를 가겠다고 했다.


여기서 한 사립중(비용이 따로 더 들진 않는다) C학교등장하는데... 사실 남편과 나는 이곳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면'에 위치한 소규모 학구중(마을에서 갈 수 있는 학교가 그 학교 한 개일 때, 즉 학군으로 묶을 수 없는 학교를 학구 라고 한다) C에 지원해보고 싶었다. 각종 체험학습과 대외활동, 학생 주도적 학교 행사, 기독교 채플, 고등 수행평가를 스스로 괜찮게 해낼 수 있는 아이로 교육해 준다는 점 등, 다양한 장점으로 정평이 나있는, 시내에서 지원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경쟁이 그렇게 치열하다는 중학교다. 전교생이 150명 밖에 되지 않는데(당연한 얘기지만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선생님이 아이들 하나하나를 온마음으로 케어해 주셔서 대학생이 돼서도 연락하고 지내는 제자들이 많을 정도라니 어떻게 안 끌려. 아이의 현재 담임선생님도 그 학교는 아이를 으쌰으쌰 해주면서 잠재력을 잘 끄집어내 주는 좋은 선생님이 많은 학교라고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안 끌려... 집 가까운 곳에 통학버스까지 와주고. 아니 근데 우리집 애는 덮어놓고 싫대요... 친한 친구 없는 게 문제라면 니가 선택한 B학교나 여기 C학교나 마찬가지니까 한번 고민 선상에 놓아만 둬봐라 설득해 봤지만 내 말은 저짝 허공으로....


학교 평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고 애들 다니는 학교 다 똑같다, 다 애 나름이고 할 애는 어디서든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나도 인정하는데, 항상 말은 너무 쉽고 마음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아이들 일 앞에선 더욱). 단점들에 더 치중해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





아이의 의견을 따랐다. 설득할 수도 강요할 수도 없다. 서류를 다 냈는데도 갈팡질팡 자꾸 생각이 난다.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이 낫진 않을까, 등교하다가 지치진 않을까, 지금이라도 바꿀까,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어서 피했지만 사실은 거기가 더 낫지 않을까...

대체 이게 뭐라고. 미래는 아무도 모르고,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어디에 가든 좋은 만남이 있기를, 잘 적응하기를, 기도하는 것뿐인데 여전히 '최최최_진짜최종본'을 잘 낸 건지 의심 한다.


아이가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 나보다는 나은 인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자꾸 불안이 되어 불쑥 올라온다. 남편도 나도 소심하고 수동적인 편에 속했었기에 아이는 좀 더 자신감 있고 당당한 청소년기를 보내길 바라게 된다. 학생의 잠재적 능력과 자존감을 한껏 끌어올려준다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는 사립중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큰 이유다.


집보다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는 학교생활의 중요성도 알지만 사실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잘 안다. 엄마아빠의 확신과 불안해하지 않는 모습. 그게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클지 모른다. 부모의 갈팡질팡하는 마음과 다 너를 걱정해서 이러는 거라는 말이 아들에게 몇 퍼센트나 사랑으로 느껴질까? 흔들리고 확신 없고 자기를 잘 못 믿어주는 부모의 모습으로 비쳐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최최최종 이런 거 그만하고 우리의 결정을 믿고 한번 해보자 하는 기대감, 자신감, 그런 걸 심어주고 싶은데. 어떤 선택이든 그저 넌 어디서든 잘해나갈 거라고 다정하게 응원해 주는 엄마이고 싶은데, 현실은 못마땅함을 기어이 표정으로 말투로.....(생략한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아니고 중학교 하나에. 하긴. 어린이집이라고 안 그랬나? 매 순간순간이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고 그게 육아의 어려운 점에서 큰 지분을 차지해왔...고, 차지하고 있고, 차지할 것이고...


이 와중에 걸려온 친정엄마의 전화.

큰애 때문에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속상해하지 말라는 말을 하려고 전화했단다. 근데 엄마, 나 그렇게까지 속상해하진 않고 삼겹살이 너무 맛있어서 신나게 먹고 있었는 걸... 이 시간에도 엄만 내 걱정을 했나 보다.

아들을 걱정하는 나를 바라보는 우리 엄마. 부모는 언제나 자식의 안위를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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