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원짜리 행복
중학교 때 다니던 보습학원이 2층에 있었다. 1층은 오락실! 그땐 한창 펌프가 유행이었다. 맨날 500원 동전을 그렇게 챙겨가서 친구들이랑 한 판 뛰고 학원에 올라갔다.
노바소닉의 또 다른 진심, 젝키의 컴백, 뫼비우스의 띠. 그때 펌프 뛰어 본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노래들. 잘하는 사람들은 묘기를 부리고(?), 화살표 쫓아가기 바쁜 사람은(=나) 어기적어기적 겨우 밟기도 바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자주 하고 수업 들었던 걸 보니 확실히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는 게 정신건강에는 좋긴 한가보다!
그로부터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 같이 사는 남자와 펌프를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펌프 바람이 불었다. 아들들하고 가끔 오락실 나들이를 하는데, 애들 2천 원씩 나눠 주고 다른 거 하는 동안 우리는 이 대결에 진지하게 임한다
평일 저녁엔 가끔 둘만 나온다. 처음엔 이지 모드로 하고 말았는데 반복해서 하다 보니 실력이 늘고(?) 이지는 지루하다며 도전정신이 생겨서 하드 모드로 대결!
남자는 날 한 번 이겨보겠다고 안간힘을 쓰지만..... 아직까진 내가 조금 더 잘하네?
'니 쫌 치네'라고 하는 남자에게 나는 과거 이야기를 했다.
나 사실 유경험자다. 그래도 이십 년도 넘었는데 뭐 영향 있겠어?
했더니, 남자 왈,
그래도 무경험자랑 유경험자는 다르다.
이 대결은 출발선부터 달랐군...
ㅋㅋㅋㅋ
여자는 체력이 달려 금방 방전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고, 남자는 체력은 안 달려 보이는데 박자감이 떨어져 화살표가 조금만 연달아 나와도 발이 지진 난다. 제법 비등비등한 대결이다.
심지어 며칠 전엔 노래를 고르다가 위에 말한 '또 다른 진심'이 있는 걸 보고 '어머머. 이게 있네!' 하고 골랐는데 진짜 웬일이니, 발이 기억하는 움직임..... 미쳤다, 이걸 기억하네. 이건 머리가 아니다. 몸의 기억은 이렇게 무섭다!
여름날. 이천 원을 쓰고 나오면 땀이 뻘뻘 난다. 이거 완전 운동이다. 가끔 옆에 있는 농구 대결까지 하면 4천 원. 팔도 다리도 너덜너덜해지지만 역시 스스로 찾아 하는 것은 꾸역꾸역 하는 다른 운동보다 훨씬 재미있다.
이천 원짜리 운동, 이천 원짜리 행복.
이천 원짜리 유흥, 이천 원짜리 산책.
행복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말은 식상하지만 그냥 너무 진실임을, 화살표를 밟다가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