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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의 전업주부

주부인 나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길

by 아드리셋


한 친구는(제목처럼 당연히 전업 엄마다) 며칠 전부터 '인스타그램 키우기'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브런치를 열심히 하다가 아무래도 자기는 인스타 쪽이 맞는 거 같고, 글보다는 영상(릴스)이 쉽고, 요즘 대세를 따르는 것이 '수익화'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 같다며 시도라도 해보겠다고 했다.


또 다른 전업주부 친구는 하루를 분 단위로 나눠서 기록할 수 있는 다이어리를 샀다 했다. 자기는 직장생활을 하진 않아도 분명 애들 케어하고 운동(발레)하면서 하루를 분주하게 살고 있는데, 늘 열심히 살아도 자꾸 아무것도 안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다이어리에 하루를 다 기록해서 자신의 시간이 대체 어떻게 흘러가는지 상세히 적어보겠다고 했다.


또 한 사람은 자기는 맨날 아무것도 하는 거 없고 재주도 없다고 말은 하는데, 들어보면 잔잔하게 뭘 계속하고 있다. 많이는 아니어도 책도 간간이 읽고, 글쓰기 챌린지도 꾸준히 하고, 활발하진 않지만 블로그 브런치도 유지하고, 영상도 만들고, 운동도 하고, 뜨개도 하고, 머리핀도 만들고.(그렇다 나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자주 사로잡히는 전업주부들. 취업이든 시험이든 뭘 도전하자니 무섭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자니 바보 같고 조급하고. 내 전업주부 친구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뭐라도 해서 문제집 한 권 값이라도, 치킨 한 마리 값이라도, 쌀 한 가마니 값이라도 벌고 싶은 마음.

당장은 아니어도 몇 년 뒤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 할 수 있는 것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뭐가 됐든 해둬보자 싶은 마음.

조금 더 들여다보자면 이렇기도 하다.

뭘 하지 않으면 내 존재 가치가 사그라지는 그런 마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

이렇게라도 해서 혹은 이거라도 해서 나를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증명하고 입증하고 싶은 마음.

그렇지만 그게 현재의 수익이든 미래의 수익이든 '생산성'과 연결되지 않으면 쉽게 허무함을 느끼고야 마는 마음.

꽤 많은 전업주부의 마음일 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나만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책 읽는 게 뭐?

글쓰기 챌린지가 뭐?

블로그든 브런치든 해봐야 뭐?

영상 조금 만들어서 포인트 몇 푼 얻어서 뭐?

수세미 떠서 뭐?

머리핀 예쁘단 말 들어서 뭐?

팔지도 않을 거, 가게 차릴 것도 아닐 거, 책 낼 것도 아닐 거.

차라리 한능검이든 토익이든 뭐가 됐든 시험공부를 해서 점수로 내보이고 스펙을 쌓든가, 컴활 같은 유용한 자격증을 따서 재취업 준비를 하든가 그거면 차라리 낫지.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책상 앞에서 분주하기만 하고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나한테 어떤 유익이 되고 효능을 주는 걸까?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SNS를 키우려는 친구도 그렇고 걔네들의 실행력이 부럽다. 그렇게 배우고 달려가는 게 부럽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도전하고 실행하지 못한다. 할 수 있는 포스팅이라도 하나 더 하면 되는데, 블로그 1일 1포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손쉽게 포기한 채 시간을 무용하게 보내며 허비한다. 자괴감이 든다. 어떤 날은 나를 너무 나무란다.


그래도 매일 그러기만 하면 내가 계속 미워지고 견딜 수 없을 거 같아서, '내가 집에서 놀고만 있진 않잖아, 살림도 하고 장도 보고 밥상을 책임지고, 아이들을 맞이하고, 나로 인해 돌아가는 구석도 분명 많잖아.' 하고 달래기도 한다.


나의 하찮은 의지력, 실행력과 상관없이. 생산적인 행위를 하든 안 하든.

그냥 내 존재를, 전업주부라는 나의 상황을, 그 나름의 고충을, 그저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고 쓰다듬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누구한테 바라기 이전에 내가 나에게 너그러워지고 싶다.



***

<불혹의 소나타>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혹의 소나타 2> 연재와 다른 연재들을 이것저것 계획하고 있어요. 언제든 놀러 와 주세요:)


생일벽꾸미기가 즐거운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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