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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윈디웬디 Apr 26. 2024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 속 '세일즈맨'이다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소외

소시민의 몰락은 가슴 아프다. 그가 가장일 경우에는 더욱 안타깝다. 가족 전체의 불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가 1949년에 발표한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 속 주인공 윌리 로먼, 그는 한때 주당 커미션만 170달러를 넘게 받던 잘 나가는 세일즈맨이었다. 세상이 온통 그의 편인 듯했다. 대공황직전, 공급과 수요가 폭발하던 그때는 세일즈맨의 역할이 빛나던 시절이었다. 윌리는 자신의 미래가 항상 장밋빛일 줄 알았고 허우대 멀끔한 두 아들에 대한 기대 또한 컸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불황의 그늘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34년간 인생을 바친 회사에서 그는 해고되었고, 당당하게 출세해서 자신의 노후를 보장해 주리라 믿었던 아들들은 낙오자가 되어 허송세월하고 있다. 윌리가 맞닥뜨린 대공황의 미국은 흡사 우리나라 IMF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예기치 못한 사회변화에 소시민의 삶은 속절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은 소비를 부추긴다. 많이 벌면 많이 버는 만큼 더 큰 차, 더 새 집, 더 신상의 가구를 구매하게 만든다. 온갖 광고에서 '당신의 사는 곳이, 당신이 타는 차가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라고 속삭인다. 당신의 존재감을 구매력으로 입증하라고 부채질한다. 승승장구하던 세일즈맨 윌리 로먼 역시 자신의 성공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줄 믿었다. 번쩍거리는 차와 새 집, 새 가구를 장만하는 것으로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불황은 점차 그의 입지를 흔들기 시작했고, 효율과 성과를 강조하는 회사의 젊은 사장은 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윌리를 냉정하게 해고한다. 갚아나가야 할 할부금과 공과금이 그의 몰락을 가속화시킨다. 34년간 밤낮없이 일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산관리에도 경력관리에도, 자식농사에도 모두 실패한 인생이었다. 윌리는 사실 대공황 시기를 떠나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소시민의 전형이다. 과도한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항상 과도하게 일하지만 그로 인해 남은 것은 무너진 건강과 갚아야 할 빚인 경우가 허다하다. 물질만능을 추구하다가 인간이 그 물질에 오히려 잠식당하는 주객전도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재능, 상품, 서비스를 팔아 밥벌이를 한다는 측면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세일즈맨'이라고 볼 수 있다. 윌리 로먼의 파국을 담은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이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던 것도 그의 몰락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해고하려는 사장에게 윌리 로먼은  절규하듯 항변했다. "저는 이 회사에서 삼십사 년을 봉직했는데 지금은 보험금조차 낼 수 없는 형편입니다. 오렌지 속만 까먹고 껍데기는 내다 버리실 참입니까? 사람은 과일 나부랭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젊은 사장은 "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지요."라고 말하며 끝내 그를 해고한다. 이윤추구가 지상과제인 자본주의 사회는 이처럼 비정하다. 한 직원이 얼마나 길게 일했는지, 얼마나 충성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회사가 그를 계속 고용해야 할 만큼 효용가치가 있는지만 따진다. 사람도 물건처럼 언제든 폐기 처분될 수 있다. 


돈을 빌리러 간 윌리에게 이웃사촌 찰리가 일자리를 제안하지만, '찰리 밑에서 일할 순 없다'라며 거절한다. 평생 폼나는 인생을 추구했던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윌리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점점 과거로 도피한다.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며 현실의 고통을 부정한다. 결국 불행한 선택을 하고 만다. 누가 이 남자의 인생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가 맞닥뜨린 인생의 비극은 비슷비슷한 옷을 바꿔 입으며 오늘날에도 반복된다. 휘둘리기 쉬운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중심을 잡고 똑바로 살아간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윌리의 죽음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이 사람을 비난할 자는 아무도 없어. 세일즈맨은 꿈꾸는 사람이거든.”

#아서밀러 #세일즈맨의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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