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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윈디웬디 May 03. 2024

당신의 고도는 무엇인가요?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더 와 닿고 이해할 수 있는 고전작품들이 있다.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에게 1969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가 대표적인 예다. 20대에 처음 동아리 선배를 통해 들었던 <고도를 기다리며>는 전혀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뭐 이런 황당한 내용이 다 있나?’였다. 선배도 이십 대, 나도 갓 십대를 벗어난 이십 초반이었기에, 인생에서 주야장천 뭔가를 이렇게 무의미하고 무모하게 기다린다는 것이 와 닿지 않던 시절이었다. 선배가 요약해 준 <고도를 기다리며>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했다.



두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도'를 기다리는 내용이다. 그런데 끝내 '고도'가 나타나지 않는다. 심지어 다 읽고 나서도 '고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다.


당시, 선배도 그다지 권하지 않았고, 나도 별로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제목과 줄거리를 들은 이래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리고 올해 봄, 비로소 그 유명한 부조리극의 대표작인 <고도를 기다리며>가 내 독서대 위에 올라왔다. 도서관 고전독서 책모임에서 함께 읽고 토론해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먼저 부정적 의견이 쏟아졌다.


난해하다. 불편하다. 지루하다. 애매하다. 아무 말 대잔치 같다. 뭔가 의미 있는 내용이 나올 줄 알고 끝까지 읽었으나 끝내 나오질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분량이 많지도 않은데 집중이 어려웠다. 왜 이 작품이 그토록 유명한지 정말 모르겠다.


반면, 긍정적인 반응도 제법 많았다. 인생의 굴곡을 경험한 연령대일수록 '좋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 역시 기나긴 삶의 여정을 은유적으로 보여 주는듯한 이 작품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단순한 이야기 속에 의미심장한 은유와 메타포가 가득하다.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제대로 분석해 보고 싶다. 처음엔 황당했으나 두 번째 읽으니 조금 더 와닿았다. 마치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인간의 허무하고 반복적인 삶을 비유적으로 잘 보여준 작품 같다. 단순하고 허술한 듯 보이지만 작가가 치밀하게 계산한 느낌이다. 우리 모두가 무언가를 꾸준히 추구하고 기다린다는 점에서 '인생'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 같다.



1막과 2막의 반복적 구도로 이루어진 <고도를 기다리며>의 스토리는 그야말로 단순하다. 두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고도(Godot)'를 기다린다. 지루함을 못 견뎌하면서 의미 없어 보이는 '아무 말'로 시간을 때운다. 나뭇가지에 목을 매고 죽을까도 생각하지만 '고도'가 올까 봐 죽지도 못한다. 자리를 뜨고 싶어도 그 사이 '고도'가 올까 봐 떠나지 못한다. 그들이 반복적으로 나누는 대사는 마치 노래의 후렴구처럼 들린다.


에스트라공 : 그만 가자

블라디미르 : 가면 안 되지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 참 그렇지


이런 상황을 가리켜 에스트라공은  "우리가 그 작자(고도)에게 꽁꽁 묶여 있는 것 같다"라고 푸념한다. 기다림에 지쳐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소년'이 나타나 고도가 오늘은 못 오지만 내일은 꼭 올 거라는 소식을 전해주고 가버린다. 하지만 내일이 되어도, 고도는 여전히 오지 않고 소년은 다시 그다음 날 올 거라고 이야기한다. 기다림은 계속된다. '소년'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 '소년'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드는 '자기 암시'일 수도 있고, 약해질 때마다 기대고 싶은 어떤 '믿음의 대상'이나 '멘토'일 수도 있겠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포조와 럭키라는 인물도 독특했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고도'라는 추상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과 달리, 포조와 럭키는 지극히 현실주의자들처럼 보였다. 무거운 트렁크를 손에 들고, 땅에 내려놓지도 않는 늙은 노예 럭키는 주인인 포조에게 잘 보이려고 적성에도 맞지 않은 일을 허리가 휘도록 수행하고 있다. 1막에서 포조는 럭키의 목줄을 당기고 채찍으로 때리는 모습으로 나온다. 일견 악덕 고용주처럼 보인다. 고된 노동과 착취의 현장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2막에서는 포조는 장님이 되었고, 럭키는 말을 못 하게 된다. 이제는 포조가 럭키에게 더 의존한다. 둘의 관계가 역전된다.


미국에서의 초연 때 연출자 알랭 슈나이더가 베케트에게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라고 묻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p.164)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작가는 ‘고도’에 대한 정의는 관객과 독자들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계속 기다렸던 ‘고도’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독자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기다리는 자신만의 '고도'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무언가를 계속 기다린다. 좋은 날이 오기를, 자유로워지기를, 슬픔이 변해 춤이 되기를,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를, 마침내 행복해지기를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무언가 기다릴 것이 있어야 소망이 있다. 각자가 생각하는 '고도'는 모두 다를 수 있다. 평안, 구원, 행복, 만족, 삶의 매 순간 그 자체 등등


그것이 '구원'이든, '깨달음'이든, '행복'이든, 종국에는 '죽음'이든. 각자가 인생에서 기다리는 그 무엇이 자신의 '고도'일 것이다. 그 기다림의 총합이 모여 삶이 된다. 자신만의 '고도'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쉽지 않은 이 책을 인내심을 갖고 읽어낸 보람은 충분히 있었다.


#사뮈엘베케트 #고도를기다리며 #부조리극 #당신의고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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